구굉: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
잔글편집 요약 없음 |
||
1번째 줄:
'''구굉'''(具宏 1577년 ~ 1642년)은 조선 중기의
5번째 줄:
[[이이]]의 제자인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 되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1598년]] 감목관(監牧官)이 되었다. 이후 [[선전관]], 도총부의 도사, 양성현감, 고창현감 등을 지냈다. [[광해군]] 때 무과에 급제, 다시 선전관이 되었다가 곧 장연현감(長淵縣監)이 되었다.
1617년 [[대북]]파에 의해 인목대비 폐모론이 일어나고, [[능창군]] 마저 [[광해군]]의 왕위를 위협한다는 죄목으로 사형당하자 [[이서]](李曙), [[신경진]](申景), [[구인후]] 등과 함께 [[능양군]]을 추대할 것을 모의하고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주(公州)까지 직접 왕을 호종하였고, 한성부판윤, 3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형조판서 등을 거쳐 1636년(인조 14) 공조판서가 되었다. 이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을 지켜 공을 세웠다. 난이 끝난 후 병조판서가 되었다. 형조판서 3번, 공조판서 4번, 병조판서 2번을 지내고 그후 오위도총부 도총관, 판의금부사,훈련대장, 어영대장, 포도대장, 총융사(摠戎使) 등을 역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