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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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Gaius Scribonius Curio)는 [[로마 공화정]]말기의 부자의 이름이다. 아버지는 [[기원전 53년]] 죽었고 아들은 [[기원전 49년]] 죽었다.
 
== 아버지 쿠리오 ==
쿠리오는 [[기원전 90년]]의 [[호민관]]이었고 [[술라]]와 함께 그리스에서 복무하였다. [[기원전 76년]]에 집정관이 되었고 [[키케로]]의 친구로서 [[카틸리나|카틸리나의 음모]]에서 키케로를 지원하였다. 나중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정적이 되었고 기원전 53년 죽었다.
 
== 아들 쿠리오 ==
'''가이우스''' 또는 '''퀸투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기원전 90년]] - [[기원전 49년]])는 집정관을 지낸 같은 이름의 아버지의 아들이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키케로]]등 당대 로마의 유력자들과 친구였다. 그는 대단한 열변가로 사람들을 선동하는데 탁월했다. [[기원전 52년]]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손녀인 풀비아와 결혼했다.
 
[[기원전 50년]] 그는 [[호민관]]이 되었고 카이사르의 지지자가 되어 [[원로원]]이 카이사르를 실각시키려 할 때 그를 옹호했다. 쿠리오는 끝까지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사이를 중재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널때 로마에서 도망쳐 그와 합류했다. 카이사르가 로마에 돌아와서 그는 [[기원전 49년]] [[법무관]]이 되었고 [[카이사르의 내전|내전]]기간 동안 카이사르를 위해 싸웠다.

그해 북아프리카에서북아프리카 [[바그라다스 강 전투 (기원전 49년) |바그라다스 강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는 [[누미디아]]의 군대와 싸우다 전사하였다.
 
[[분류:고대 로마의 정치인]]
[[분류:전사한 사람]]
 
[[bg:Гай Скрибоний Курион (народен трибу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