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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
 
종회는[[종회]]는 부하장수 [[위관 (인물)|위관]](衛瓘), [[호열]](胡烈) 등과 함께 등애를 모함하고 등애의 글을 가로채 불손한 내용으로 바꿔 보냈다. 결국 등애를 의심하게 된 사마소는[[사마소]]는 [[264년]] 1월 등애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종회는[[종회]]는 위관을[[위관 (인물)|위관]]을 보내 등애를 잡아들이게 했다. 등애는 잠을 자다가 새벽녘에 아들 [[등충]](鄧忠)과 함께 위관의[[위관 (인물)|위관]]의 군사들에게 체포되어 함거에 갇혔다.
 
종회가[[종회]]가 강유와[[강유]]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려다 죽자 등애의 부하들은 등애를 구출하려 했다. 위관은[[위관 (인물)|위관]]은 자신이 종회와[[종회]]와 함께 등애를 모함한 것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호군 [[전속]](田續)을 보내 등애 부자를 죽였다.
 
원래 전속은[[전속]]은 강유(江由)에 왔을 때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들지 않았기 때문에 등애가 죽이려 하였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달아난 적이 있었다. 위관은[[위관 전속에게(인물)|위관]]은 [[전속]]에게 옛 일을 설욕할 수 있다고 부추겨 끝내 등애를 죽게 한 것이다.
 
[[273년]] 의랑(議郞) 단작(段灼)과 옛 촉나라의 신하였던 [[번건]](樊建)이 [[서진|진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에게 등애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등애의 맏손자 등랑(鄧郞)이 낭중(郞中)에 임명되었다.
 
==등애의 친족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