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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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1 = {{국기나라|청나라}}
|교전국2 = {{국기나라|일본 제국}}
|지휘관1 = {{국기그림|청나라}} '''[[광서제]]''' <br/>{{국기그림|청나라}} [[이홍장]]<br/>{{국기그림|청나라}} [[정여창]]† <br> {{국기그림|청나라}} [[등세창]]†
|지휘관2 = {{국기그림|일본 제국}} '''[[메이지 천황]]''' <br/> {{국기그림|일본 제국}} [[야마가타 아리토모]]<br/>{{국기그림|일본 제국}} [[이토 스케유키]]
|병력1 = 63만<br/>[[북양군벌]]<br/>[[북양함대]]
|병력2 = 24만<br/>[[일본 육군]]<br/>[[일본 해군]]
|사상자1 = 3만 5천5000명 전사 <br> 823명 부상
|사상자2 = 1만 8천8000명 전사 <br> 3973명 부상
|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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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에서의 충돌 ===
[[File:Sino Japanese war 1894.jpg|right|300px|청일전쟁 당시의 일본군]]
신흥국가로서, 일본은 그 관심을 [[조선]]에 돌렸다. 이는 일본에게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로, 먼저 조선을 합병하여 그 이권을 차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일본은 한반도에 다른 나라의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일본의 안전에 해가 되며, 따라서 일본은 수백 년간의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해제하여 조선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자 하였다. 또한, 일본은 조선의 석탄과 철광이 일본의 확장 일로에 있는 산업 기반에 도움이 될 것임을 인식하였다.
신흥국가로서, 일본은 그 관심을 [[조선]]에 돌렸다. 이는 일본에게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로, 먼저 조선을 합병하여 그 이권을 차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신흥국가로서, 일본은 그 관심을 [[조선]]에 돌렸다. 이는 일본에게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로, 먼저 조선을 합병하여 그 이권을 차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일본은 한반도에 다른 나라의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일본의 안전에 해가 되며, 따라서 일본은 수백 년간의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해제하여 조선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자 하였다. 또한, 일본은 조선의 석탄과 철광이 일본의 확장 일로에 있는 산업 기반에 도움이 될 것임을 인식하였다.
 
조선은 전통적으로 청나라에 조공을 바쳐 왔으며, 보수파는 청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고, 개화당들은 일본과 서방 국가들과의 연대를 확립하기를 원했다. [[아편 전쟁]]과 [[청불 전쟁]]의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른 후, 청나라는 약해졌고 서양 열국의 간섭과 [[불평등 조약|잠식]]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일본은 이를 조선에서 청나라 대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