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석 (190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Yiekuno (토론 | 기여)
Yunpk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56번째 줄:
|기타 이력=중국 동북항일군 작전과장, 육군 제3로군 참의급(參議級) 고급참모(중국군 소장)겸 중국군 제3집단군 제50군단 참모처장, 제3집단군 55군단 참모처장. 전역후 한국 광복군 육군소장 임관
|}}
'''이범석'''(李範奭,리범석, [[1900년]] [[10월 20일]] - [[1972년]] [[5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와 [[북로군정서]] 등지에서 항일독립활동을 하였으며, [[청산리 전투]]에 [[김좌진]]을 도와 공을 세웠다. 그뒤 [[소련]]과 만주에서 활동하던 중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 광복군]]의 중장으로 [[한국 광복군|광복군]] 참모장과 제2지대장 등을 지냈다. [[1945년]] 귀국을 시도했다가 강제로 상해로 되돌려보내졌고 [[1946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안호상]]과 함께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반공주의]] 정치 활동을 하였다.
 
[[김구]]의 남북협상에 반대하여 [[이승만]]에 협력, 단정 수립에 동참하여 [[1948년]] [[7월 31일]] 부터 [[1950년]] [[4월 20일]]까지 제1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역임하였고 [[8월 15일]]부터는 [[대한민국의 국방부|국방부 장관]]도 겸임하였다. 이후 주[[중국]]대사와 내무부 장관을 거쳐 1952년 제2대 부통령 후보에 출마했고, 1956년 제3대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이승만]]의 견제로 낙선하였다. [[1960년]] 이후에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탈당, [[국토통일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