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건국준비위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Peachvalley (토론 | 기여)
Sienic (토론 | 기여)
69번째 줄:
=== 의의 ===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인 [[서중석]]은 '해방 후 건준 같은 조직이 돼 있지 않았으면 굉장한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충칭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해외에 주요 독립운동 단체들이 해외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이 되기 전부터 [[여운형]]을 비롯한 중도파 계열들이 중심으로 건국동맹이 조직되었고, 그래서 해방이 되는 날부터 건준이 조직되어 활동하였기 때문에 안정이 어느 정도 되었다. 우선, 치안과 행정같은 주요 업무를 우리 스스로 주체적으로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굉장한 의의를 두면서 평가하고 있다.<ref>KBS 인물 현대사, 여운형 편</ref>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에드거 스노]] 기자는 해방 후 [[미군정|조선]]에 와서 2개월간 머무르면서 정세를 알아보고 귀국한 뒤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인용문|미국은 아무 준비가 없이 조선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조선에는 건국준비위원회가 있었다. 곧 정치적 준비가 있었다. 미국인이 만일 건국준비위원회를 살렸더라면 조선의 건설은 더 신속하고 유리하였을 것이다.<ref><에드거 스노 자서전>, 에드거 스노 저. -제 4부 냉전- 문단 인용. 에드거 스노 자서전에는 '건준'이 아닌 '[[인민위원회]]'라고 명기되어 있다.</ref>}}
 
=== 한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