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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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이전에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비롯된 [[민주주의]] 기운의 고조에 의해 지식 계급이나 사회주의자 등의 혁신파 (革新派) 는 명백하게 군의 축소 지지와 군의 비판을 하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가 일반 시민에게도 널리 퍼지면서 군복 차림으로 전철을 탄다고 욕을 당하는 등, 당시의 군인들은 위축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1932년]] [[5월 15일]] [[미카미 다카시]]가 극단적 우익단체인 [[혈맹단]]이 정당, 재벌 타도를 목표로 쿠데타를 일으켰고 해군 청년 장교 10명과 육군 사관후보생 11명, 그리고 민간 농본주의자 일파로 구성된 쿠데타군은 수상 관저, 정우회 본부, 경시청, 일본은행 등을 습격하고 마침내 수상 이누카이 쓰요시를 총으로 쏘아 암살한다.
 
이 사건은 [[2·26 사건]]과 함께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2·26 사건]]과 달리 무기는 민간으로부터 조달되었고, 장교들도 부하 병사들을 동원하진 않았기 때문에 그 성격은 크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