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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관터는 본래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위패를 봉안한 덕안궁이 있던 곳이다. [[경성전기회사]]는 서울의 전기사업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그 댓가로 50만원을 납부하였다. 그 돈을 바탕으로 경성부의 부민들을 위하여 5,600여 제곱미터의 규모의 다목적 강당을 지어 문화공연장으로 사용하였다.
 
일제말기에 부민관은 일제의 전쟁독려를 위한 정치집회를 위하여 많이 사용되었다. 모윤숙과[[모윤숙]]과 이광수는[[이광수]]는 부민관에서 일제의 전쟁에 협력하라는 연설을 하였다.
 
1945년 7월 24일에 부민관에서는 [[박춘금]]의 '아시아민족의 해방' 강연회와 '남년청년 분격웅변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조문기]], [[류만수]], [[강윤국]] 등이 설치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 한 명이 즉사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이것을 [[부민관 폭파 의거]]라고 부른다. 이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부민관 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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