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람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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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VarahranIProfile.jpg|thumb|바흐람 1세의 동전]]
'''바흐람 1세'''(<small>[[영어]]:Bahram I, [[페르시아어]]:Bahrām, ? ~- [[276년]]</small>)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샤]]이다. 중기 페르시아어(Pahlavi, [[팔라비어]])로 화폐에나 명문에 쓰일 때는 바하람(wrḥr'n/warhrān)으로 표기하였으며, 후대의 [[조로아스터교]]의 문서 등엔 와라후(w'hl'm/wahrām)라고 적었다. 제위에 오르기 전엔 기란([[:en:Gilan Province|Gilan]])의 왕으로서 [[카스피해]] 남부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 생애 ==
 
== 마니교 박해 ==
바흐람과 협력한 조로아스터교의 모우바단 모우바드<ref>Mowbadān-Mowbad, 모우바드(아후라 마즈다 등의 상위 신들의 신전을 관리하는 고위 신관)중의 모우바드라는 뜻으로, 최고위 신관을 의미한다.</ref> [[카르티르]](Kartir Hangirpe)는 마니교의 창시자이며 예언자인 [[마니 (예언자)|마니]]를 처형하였다. [[투루판 시]]에서 출토된 마니교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마니는 형이 집행되기 전 감옥에서 그대로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후세의 마니교도들이 남긴 종교 문서류나 전설 등에서는 마니의 죽음을 순교자로 과대하게 왜곡하거나 윤색한 것도 많아, 가죽을 벗겨진 마니가 아직 살아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또한 [[아라비아어]]의 일화집 중에는 짚이 가득 채워진 마니의 가죽이 가끔 샤푸르 도시의 성문에 매달아지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로아스터교단의 도움을 받아 제위에 오른 바흐람 1세의 입장에 의하면 마니교의 박해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동안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던 마니교는 당시 널리 퍼져 있는 상태였지만, 대다수가 박해받아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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