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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엔 [[동탁]](董卓)의 신하로써 그를 섬겼으나, [[동탁]]의 전횡을 보고 분노하여 [[동탁]]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전에 발각되어 감옥에 투옥돼 사형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동탁]]이 [[왕윤]](王允)에게 암살당했기 때문에 풀려날 수 있었다. 그후 할거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자신이 원하던 촉군태수(蜀郡太守)가 되려 했으나, [[유언 (중국 사람후한)|유언]](劉焉)이 이미 교통로를 끊어버렸기에 형주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헌제]]를 자신의 본거지로 맞이한 [[조조]]에게서 편지가 와서, 군사로써 그를 섬기게 되었다.
 
[[여포]](呂布) 토벌, [[관도 전투]] 등 [[조조]]의 중요한 전투 대부분에 군사로써 종군하여 [[조조]]에게 항상 적절한 조언을 하였다. 또 실제 전투에서도 관도 전투의 전초전인 백마 전투에서는 [[원소 (삼국지)|원소]]군의 기병대장 [[문추]](文醜)를 죽이는 공적을 세웠다. 그 때문에 [[곽가]](郭嘉) 사후에는 [[조조]]의 최측근으로써 항상 곁에 있었고 그 신임이 특히 두터웠다고 한다.
 
[[적벽 전투]]에서도 순유는 적이 화공을 준비하려는 책략을 알아채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하라고 조언하였으나, 이미 승리를 자신하던 [[조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사태는 순유가 걱정한 대로 화공에 의해 조조군이 대패하고 말았다.
214년 [[조조]]의 [[오 (삼국)|오]] 토벌에 종군하던 시기 병으로 인해 쓰러져 얼마안가 진중(陣中)에서 사망했다. 경후(敬侯)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조조]]는 순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순유는 [[조조]]의 패업을 지탱했던 명군사였다. [[조조]] 최측근이면서도 사치를 부리는 일도 없었고, 언제나 겸손하고 친절하여 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종요]](鍾繇)와는 절친하여 순유가 죽을 때, 남겨진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종요]]에게 맡기겠다고 유언하였다. 허나 아들 2명도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순유의 집안은 한미해졌다. 이후 순집의 아들인 순표(荀彪)가 성인이 된후 다시 순유의 가문을 부흥시켰다.
 
==삼국지연의에서의 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