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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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티아라을티아라를 건설했고, 그리하여 과거 페니키아 식민시와, 동쪽의 벵가지부터 서쪽의 [[지브롤터]]와 [[포르투갈]]에 이르는 지역([[사르데냐]], [[코르시카]], [[시칠리아]] 일부, [[발레아레스]] 제도 등)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했다.
 
카르타고는 [[지중해]]에 면해 있으면서 동시에 육지에 비옥한 경작지를 소유한 탓에 농업에 종사한 가문들과 상업에 종사한 가문들 사이의사이에서 오랜갈등이 갈등을끊이질 겪었다않았다. 일반적으로 상업 중심파가 정부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6세기]]에 이르면이르러 지중해 서부의 [[헤게모니]]를 확립시키기에 이른다. 기원전 6세기 초반, [[항해자 한노]]가 [[아프리카]] 해안가까지 항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의 [[시에라리온]]에까지 도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 번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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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18년]] [[한니발]]이 [[히스파니아]]의 사군툼을 공격함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 한니발은 많은 군사를 이끌고 갈리아 남부를 돌아 알프스를 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병력과 [[전투 코끼리]]를 잃기도 했지만 북부 이탈리아로 침입해서 [[기원전 216년]]의 [[칸나이 전투]]를 비롯한 여러차례의 전투에서 로마군을 패배시켰다.
 
그러나 로마군은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지연전술로 만회할 시간을 벌었고 한니발은 결코 이탈리아 전역을 손에 넣지는넣지 못했다. 이탈리아 외에 히스파니아, 시칠리아, [[그리스]]에서도 로마군과 카르타고 군은군이 격돌했으나 끝내는 로마군이 모두 승리하고승리했다. 전장은 아프리카로 넘어갔고 [[기원전 202년]]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근처에서 벌어진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카르타고가 결정적으로 패함으로써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 전쟁으로 카르타고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막대한 배상금을 로마에 물어주고 지중해 서부의 재해권과 이권을 로마에 빼앗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