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랑호 납북 사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스튜어디스 성경희 관련 내용 삭제(오기 수정)
(스튜어디스 성경희 관련 내용 삭제(오기 수정))
한편, 대한민국 [[경찰]]은 같은달 20일 북한공작원인 김택선을 포함한 3명이 범인으로 발표하고 25일에는 기덕영등 3명을 사건의 공작과 배후공작의 혐의로 체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월 22일 [[국회]]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를 행하고, UN군에 참가한 16개국에 대해 협력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를 받은 UN군은 [[2월 24일]]의 군사정전위원회에 수석대표가 승객과 승무원, 기체의 조속한 송환을 북조선에 요구해, [[1958년]] [[3월 6일]] 스튜어디스, 유아 1명, 납치범으로 생각되는 7명을 제외한 모든 승객과 승무원을 [[대한민국]]에 돌려보낸다. 당시 창랑호의 스튜어디스인 성경희는 아직까지 북한에 억류되어 있으며 2001년 2월, 제3차 이산가족 방북단으로 평양을 방문한 어머니를 만났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은 창랑호에 탑승한 모든 인원에 대해 세뇌를 실시했으며 이에 협조적이지 않은 일부 탑승자들에게 고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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