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동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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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동맹은 비밀리에 활동하였으며, 최종적인 목표는 조선의 완전독립, 민주국가 건설을 강령으로 삼았다. 즉, 일제의 패망을 대비하여 한반도의 광복이 갑작스럽게 왔을때 대비하여 결성된 지하 비밀 독립운동 단체인것이다. 또한, 이단체는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들까지 좌우익세력들을 망라한 애국세력들이 뭉친 비밀리 조직으로 해외 각지에 흩어진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과 긴밀히 연락을 하였고 연대를 추진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옌안에 있는 '연안독립동맹'과 연대를 추진한것과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긴밀히 연락을 취한것을 들을수있다. '연안독립동맹'의 수장이었던 [[무정 (사람)|무정]]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의 한성에서 연락을 취하던 대규모 독립단체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에 중국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 광복군]]은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했었는데, 당시 국내에서 비밀리 지하 독립운동을 하였던 건국동맹과 비밀리이 연락망을 취하기도 하였다.
 
[[1945년]] 3월에는 건국동맹의[[건국동맹]]의 산하에 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본군의 후방교란과 노농군 편성을 계획하면서 경기도 주안 조병창의 [[채병덕]] 중좌와 두차례접촉하고자 접촉당시 은행원으로 지내던 [[손기정]]을 보내 채병덕 중좌에게 전갈을 보냈고<ref>《여운형 평전1》. [[강덕상]] 저. p531</ref>, 채병덕 중좌와 두차례 접촉해 유사시에 무기공급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1945년]] 4월에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회담과 관련해 연안 독립동맹과 구체적인 연계를 위해 [[이영선]]을 파견하고, 5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접촉하기 위해 [[최근우]]를 [[베이징]]에 파견했다파견하여 연락을 시도했다. 그리고 8월초에는 총독부 경찰에 그 존재가 드러나드러나게 버려서되어 8월 4일 관철동집회소에서 건국동맹의[[건국동맹]]의 간부 [[조동호이걸소]],[[황운]],[[이석구]],[[이걸소조동호]]등이 검거됨에검거되었고, 이에 따라 [[최근우]],[[김세용]],[[이여성]],[[이상백]],[[김기용]],[[야자 이만규|이만규]]등을 중앙위원으로 선출했다.<ref><여운형 평전>, name="이기형 지음.<"/ref>
 
건국동맹은 1만여명의 맹원을 확보해서 외곽 단체 농민동맹도 조직하고 해외 연락 사업을 벌였으며 심지어 국외에서 편성한 병력을 [[1945년]] [[8월 29일]] 국치 35주년의 날에 국내로 진공시킬 계획까지 추진했다고 한다. 건국동맹의 인력과 자원이 건준 활동의 발판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