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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술'''(宇文述, ? - [[616년]])은 중국 [[수나라]]의 장군이다. 본래 [[선비족]] 출신으로 성은 파야두였다. 자는 백통(伯通).
'''우문술'''(宇文述, ? - [[616년]])은 중국 [[수나라]]의 장군이다. 본래 [[선비족]] 출신으로 성은 파야두였다. [[북주|주나라]]를 섬겨 벼슬이 상주국에 이르고, [[589년]] [[수 문제]] 때에 [[진 (남조)|진나라]]를 평정한 공으로 안주 총관이 되었다가, [[605년]] [[양제]]가 즉위하자 허국공에 봉해졌다. [[612년]] [[고구려]] [[영양왕]] 때 양제의 [[고구려-수 전쟁|제2차 고구려 원정]] 때 [[우중문]]과 함께 30만 육군을 이끌고 [[평양]] 부근까지 쳐들어왔다. 그러나 [[을지문덕]] 장군에게 살수에서 크게 패하고 돌아가 평민으로 떨어졌다가, 후에 다시 등용되었다.
 
== 생애 ==
'''우문술'''대군(宇文述,代郡) ? - [[616년]]무천(武川) 중국 [[수나라]]의 장군이다. 본래 [[선비족]] 출신으로 성은 파야두였다사람이다. [[북주|주나라]]를 섬겨 벼슬이 상주국에 이르고, [[589년]] [[수 문제|문제]] 때에개황 초년에 [[진 (남조)|진나라]]를 평정한 공으로 안주 총관이안주총독이 되었다가, 그는 [[605년수 양제|양광]](楊廣)를 도와 태자 양용(楊勇)을 해치로 [[양제수 문제|문제]]로 하여금 양광을 태자로 세우도록 종용하였다. [[605년]]에 양광이 즉위하자 허국공에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 허국공(許國公)에 봉해졌고 당시 그의 권세는 조정을 기울게 할 봉해졌다정도였다. [[612년]] [[고구려]] [[영양왕]] 때 양제의 [[고구려-수 전쟁|제2차 고구려 원정]] 때 [[우중문]]과 함께 30만 육군을 이끌고 [[평양]] 부근까지 쳐들어왔다. 그러나 [[을지문덕]] 장군에게에게 살수에서 크게 패하고 돌아가 평민으로 떨어졌다가, 후에 다시 등용되었다.
 
{{글로벌세계대백과}}
[[분류:수나라 사람]]
[[분류:616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