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트 폰 체펠린 백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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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생애 ==
체펠린은 [[1838년]] [[7월 8일]] 보덴 호수가 콘스탄츠에서 태어났다. 이후 17세가 되어서 체펠린은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고 중위로 입대한 뒤 23세때 [[남북전쟁]]에 참가했다. 그러나 전쟁에 환멸을 느낀 체펠린은 [[미시시피 강]]의 지리학 탐험대에 참가했고 [[기구 (비행체)|기구]]를 접하게 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창공에의 도전》, 김인만, 아동문학사, 1989년</ref>
 
이윽고 유럽으로 돌아온 뒤 체펠린은 [[보불전쟁]]에 참가했다. 체펠린은 보불전쟁에서 무훈을 세우고 1872년 장군이 되어 퇴역했다. 보불전쟁이 끝나고 체펠린은 외교관이 되었으나 [[빌헬름 2세]]와 의견충돌로 싸우고 난 뒤 화가 난 황제에 의해 모든 공직을 빼앗겨 버렸다.<ref>《창공에의 도전》,name=autogenerated1 김인만, 아동문학사, 1989년</ref>
 
1873년에 비행선의 건조를 청하는 서류를 당국에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체펠린은 1893년, 설계도를 당국에 제출했다. 11마력 가솔린 엔진 2기의, 길이 117m의 크기였다. 그러나 검토 위원들은 "금속 뼈대로 된 것은 하늘에 뜰 수가 없고 뜬다고 해도 너무 크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해 버렸다.
 
체펠린은 결국 자비로 비행선을 만들었다. 격납고를 만들 땅은 없었기 때문에 보덴 호수의 수면에 만들었다. 1900년 7월 2일에, 길이 128m의 루프트쉽 체펠린 1호(통칭 LZ 1)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비행하고 15분쯤 뒤, 비행선이 부러져 버렸다. 수리 이후 다시 비행을 했으나, 두 번째 비행에서는 공중에서 엔진이 멈춰 버렸다. 자금이 모자라진 체펠린은 결국 LZ 1을 해체하여 모두 팔 수밖에 없었다.<ref>《창공에의 도전》,name=autogenerated1 김인만, 아동문학사, 1989년</ref>
 
==== LZ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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