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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 ==
기존의 역사학계가 이른바 [[식민사관]]이나 [[일제 강점기]]의 이론을 답습하고 있다는 주장, 기존의 연구 성과와의 불일치, 검증되지 않거나 신빙성이 낮은 정보의 사용, 단편적인 일치에 기초한 논리의 비약 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역사학계에서 수용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야사학'과 '강단사학'의 호칭을 아예 인정하지 않거나 반감이나 비판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Who}}
 
또한 대개 유물이나 유적이 아니라 문헌을 중심으로 삼지만, 이러한 문헌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서들 참고한다 .<ref>최진섭, 《희망에 반하여 희망하라》, 1999년; 임지현, 《이념의 속살(억압과 해방의 경계에서)》, 2001년, 220쪽.</ref> 극우에 친화성을 띠는 ‘재야 국수주의 사학자’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ref>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3》, 1994.</ref> 또한 이러한 주장을 두고 “새로운 신화 만들기”라는 평이 있다.<ref>강돈구, 〈새로운 신화 만들기-재야사학에 대한 또 다른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78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년.</ref> 그 등장을 두고 역사학계가 연구의 미덕만 강조하였을 뿐,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발표하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지 못해 “재야사학이라는 기형적 역사 연구의 틀”이 등장했다는 지적도 있다.<ref>김기섭, 《주제별로 풀어쓴 한국사 강의록 (고대편)》, 1998년.</ref>
 
또한 대개 유물이나 유적이 아니라 문헌을 중심으로 삼지만, 이러한 문헌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서들 참고한다 .<ref>최진섭, 《희망에 반하여 희망하라》, 1999년; 임지현, 《이념의 속살(억압과 해방의 경계에서)》, 2001년, 220쪽.</ref> 극우에 친화성을 띠는 ‘재야재야 국수주의민족주의 사학자’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ref>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3》, 1994.</ref> 또한 이러한 주장을 두고 “새로운 신화 만들기”라는 평이 있다.<ref>강돈구, 〈새로운 신화 만들기-재야사학에 대한 또 다른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78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년.</ref> 그 등장을 두고 역사학계가 연구의 미덕만 강조하였을 뿐,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발표하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지 못해 “재야사학이라는 기형적 역사 연구의 틀”이 등장했다는 지적도 있다.<ref>김기섭, 《주제별로 풀어쓴 한국사 강의록 (고대편)》, 1998년998년.</ref>
일각에서는 재야사학을 강단사학과 상호보완하는 관계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ref>[http://newadmin.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61544 "닫힌 반도사관으론 동북공정 못 막는다"], 《오마이뉴스》, 2006.9.22.</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