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장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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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date = 201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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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고대 [[발해]]의 영역으로 닝안 시 보하이 진에는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의 유적이 남아 있고, 시역 전체에 많은 발해 무덤이 발굴되고있다. 또한 닝안 시의 구시가지(구칭 : 영고탑)에 [[청나라]] 초에 영고탑 장군이 두어져, 청의 만주 지배의 거점이 되었다.
 
무단장은 만주에서 무단우라(穆丹烏拉, '구불구불한 강')로 불리며 무단장(牡丹江)으로 표기되었다.
 
무단장의 도시로의 역사는 짧아 약 7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일대는 [[무단 강]] 연안 습지대이자 원주민의 삼림 지대로 인가가 없는 황무지였다. 러시아가 [[둥칭 철도]]를 부설할 때 (구) 무단장 역이 설치되었고 청나라의 붕괴와 함께 많은 중국인이나 조선인이 이주하여 농업 등을 시작했다.
 
[[만주 사변]] 이후 [[만주국]]이 탄생하면서, 만주 동부의 광산자원과 산림자원 개발 및 연해주, 소련에 대한 장래의 군사 작전을 위해 많은 철도가 부설되었다.
 
1934년 투먼과 닝안을 잇는 투닝 선(図寧線)의 전 노선이 개통하면서 닝베이 역 부근에는 수천 명의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정착했고, 역 주변에 바둑판 모양의 도시 계획이 이루어졌다. 1937년 12월, 무단장 성이 분리되면서, 닝베이 역 부근의 도시는 그 성도인 무단장 시가 되었다. 무단장 시는 동만주의 거점으로서 관동군이 기지를 두고 일본의 다양한 회사가 목재, 화학 식품 등의 공장이 진출해 공업 도시로서 인구가 급증했다. 한편, 산지는 중국인이나 조선인이 항일 부대의 거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었다.
 
무단장은 1945년 8월에 [[소련]]이 점령했다가 이후 [[중국 공산당]]군이 점령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무단장 성의 일부였다가 헤이룽장 성 관할로 재편되었다. 무단장 시는 둥베이 최고의 공업 도시로 많은 공장과 이민자들이 모여 들었다.
 
== 인구와 민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