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웅우 왕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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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웅얀의 즉위와 냐웅얀 왕조===
아유타야 전쟁의 영향으로 국력을 엄청나게 소진한 버마 지역에서는 여러 군벌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포르투갈인 [[드 브리투]](De Brito, 버마식으로 응아진까)가 하부 버마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삐, 따웅우, 잉와 등이 각각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버고 중심의 정통 정권에 맞섰다. 난다버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난다버인의 동생 [[냐웅얀 (왕)|냐웅얀]](재위 1599~1605)은 [[냐웅얀]] 지역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장하여 잉와를 접수하였고, 이후 버고와 삐의 잔존세력을 흡수하여 잉와에서 대관식을 올렸다. 이후 냐웅얀은 다시 버마의 통일을 위해 정복전쟁을 벌였으나 병에 걸려 얼마 못 가 숨졌다. 이 냐웅얀의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따웅우 왕조를 '''냐웅얀 왕조'''라고도 하는데, 이후 따웅우 지역이 독립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폐허가 된 버고 역시 정치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왕국의 정치적 중심은 잉와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포르투갈인의 정치적 소멸===
냐웅얀의 아들 아나욱펫룬(재위 1605~1628)은 다시 통일 전쟁을 벌여 1610년까지 삐와 따웅우를 재편입하고 드 브리투의 세력을 공격하여 평정하였다. 나아가 포르투갈계 잔여 세력을 라카인의 왕이 섬멸하여, 버마에 세력권을 구축하려던 포르투갈의 시도는 완전히 좌절되었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