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랄 웃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잔글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군주 정보
|이름 = 잘랄 웃딘(Jalāl al-Dīn)
|그림 =
|그림 크기 =
|설명 =
|칭호 =
|본명 = 잘랄 웃딘 멩구베르디(جلال الدين منكبرتي , Jalāl al-Dīn Menguberdī)
|재위 = [[1220년]] -~ [[1231년]]
|대관식 =
|종교 = [[이슬람교]]
|출생일 = 불상
|출생지 =
|사망일 = [[1231년]]
18번째 줄:
|부친 = [[알라 웃딘 무함마드]]
|모친 =
|전임자 = [[알라 웃딘 무함마드]]
|후임자 = (왕조 멸망)
|왕조 = [[호라즘 제국]]
}}
 
'''잘랄 웃딘 멩구베르디'''(Jalāl{{llang|ar|جلال الدين منكبرتي}}, {{llang|en|Jalal al-DīnDin MenguberdīMenguberdi}}, ? ~ [[1231년]])은 [[호라즘 제국]]의 제8대 [[술탄]](재위 : [[1220년]] - [[1231년]]).으로 제7대 술탄술탄인 [[알라 웃딘 무함마드]]의 아들아들이다.
 
== 생애 ==
군사적 재간이 뛰어났지만, 궁정내의 대립으로부터 칸그리족 출신의 할머니에게 소외당하고 중앙정치에서 밀러나 호라즘 제국령 남부의 가즈나(현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총독이 되어 임지에 부임하고 있었다.
 
[[1219년]]에 [[몽골 제국]]의 [[칭기즈 칸]]이 [[중앙 아시아]]에 침공해 오자 도시가 함락되고 호라즘 제국이 붕괴되어, 다음 해에 무함마드가 도피처인 [[카스피해]]에서 병사하면서, [[1221년]] 호라즘 지방의 수도 [[우르겐치]]로 돌아와 술탄에 즉위 했다.
 
잘랄 웃딘는 곧바로 본거지의 가즈나로 돌아오고 재기를 도모하여, 현지의 유력자를 규합하고 군사를 모았다. 동년에는 카불 근교의 파르바로 [[시키 쿠투크]]가 인솔하는 몽골군의 선봉 부대를 물리쳐 몽골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승리를 거둔다.그러나, 이 소식을 받은 칭기즈 칸은 중앙 아시아의 사마르칸트에 주둔하고 있던 본군을 인솔하여 아프가니스탄에 남하하였고, 잘랄 웃딘은 각지에서 흩허지고 군사를 줄이고, 인더스강까지 남하했다. 인더스강 하류의 딘코트로 행해진 결전에서 잘랄 웃딘은 졌지만, 인더스강의 탁류를 이용해서 말로 타고 건너, 살아 남은 소수의 부하와 함께 인도에 도망쳤다. 칭기즈 칸이 이러한 자랄 웃딘의 모습에 경탄 하여, 왕자를 향해 "남자라는 자네같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고 하는 일화가 남아 있다.
46번째 줄:
|대수 = 8
|직책 = [[호라즘 제국]]의 술탄
|임기 = [[1220년]] -~ [[1231년]]
|앞이름 = 전 임
|뒤이름 = 후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