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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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환'''(李天煥, [[1922년]] [[4월 5일]] ~ [[2010년]] [[3월 26일]])는 [[대한성공회]]의 첫 번째 한국인 [[성공회]] 주교이다. 세례명은 '''바우로'''이다.
 
[[연세대학교]] 이사장,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대한기독교서회]] 이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바가 있다.
 
== 경력 ==
[[1922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였다. [[1952년]]에 부제 서품을, 3년 뒤인 [[1953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1965년]] 처음으로 한국인 [[성공회]] 주교가 되었으며,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의 교구장으로 활동하였다.

그 이전까지는 [[존 데일리]](1903년 ~ 1993년, 한국명 김요한, [[1992년]] [[관구]]로 승격하기 전까지 캔터베리 관구에 속했던 [[대한성공회]]의 [[교구장]]과 대전교구장으로 활동.) 등의 비(非) 한국인 주교가 교구장을 역임하였다.
 
이천환 주교는 성공회 [[전례]]와 [[성사]]의 근거인 [[성공회 기도서]]([[1965년]])의 사용을 인가하였으며, [[1974년]] 명예 [[영국 제국 훈장|CBE]] 훈장(honorary CBE)을 받았다. [[1985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이천환 주교는 재임 시 한국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1965년]] 한국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기도모임, 개신교 교파들과의 부활절 연합예배 참여, 루터교와의 축구 모임 등 기독교 세계의 분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실제로 성공회가 한국교회 중 가장 적극적으로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이천환 주교의 관심과 노력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ref>{{뉴스 인용
[[2010년]] [[3월]] 노환으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선종하였다.
|url=http://www.veritas.kr/contents/article/sub_re.html?no=6927
|제목=故 이천환 주교, 한국 교회일치 운동의 선구자
|저자=베리타스
|작성일자=2009-03-31
|확인일자=2010-11-11}}</ref>
 
[[2010년]] [[3월 26일]] 노환으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선종하였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