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노미야 지카코 내친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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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3월, 에도성에서 이에모치와 결혼식을 치르고 가즈노미야가 이에모치에게 강가(降家)<ref>하가(下家)의 일본식 표현으로 왕녀가 신하의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을 뜻함</ref> 하는 것으로 [[공무합체]]가 이루어졌다. [[에도 시대]]는 물론, 그 이전에도 무가(武家)와의 혼인으로 [[간토 지방]]으로 내려간 황녀는 가즈노미야가 유일하다.<ref> 7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구]]가 [[레이겐 천황]]의 황녀인 요시코 내친왕과 약혼한 적은 있으나 이에쓰구의 요절로 결혼은 무산되었다. </ref>
 
가즈노미야는 [[오오쿠]](大奥)에서 [[소토리시마리]]인 [[다키야마]](瀧山), 혼슈인([[도쿠가와 이에사다]] 생모), [[덴쇼인]](이에사다 정실) 등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가즈노미야 및 그를 수행하는 시녀들은 천황가의 관습을 고집하고 (일례로 천황의 허가 없이는 겨울철이라도 버선을 신지 않은 맨발로 다님), [[오오쿠]] 쪽에서도 가즈노미야 일행에게 불손한 대우로 응답하여 당초에는 험악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훌륭한 인품으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잘 이해했던 이에모치의 노력으로 양쪽이 화해하게 되었다
 
이에모치는 공식적인 측실은 만들지 않고, 가즈노미야만을 삶의 반려자로 삼아 부부사이는 양호한 편이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첩이 몇 명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누구와의 사이에도 아이는 끝내 출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