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댐피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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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략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알렉산더 셀쿼크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이다. 싱크포츠 호의 선장 토마스 스토라도린과 그의 항해장을 맡고 있던 셀쿼크와의 사이에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1704년]] 10월 싱크포츠 호는 칠레 앞 바팬 페르난데스 제도의 무인도에 보급을 위해 정박했다. 셀쿼크는 싱크포츠 호의 내구성을 강하게 우려했고, 댐피어와 말다툼 후에 섬에 방치되었다. 셀쿼크는 4년 4개월 동안 섬에 방치되었으며, 그의 경험은 [[다니엘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기반이 되었다. 셀쿼크의 우려는 맞았다. 1개월 후 싱크포츠 호는 대다수의 선원과 함께 침몰했다. 댐피어는 [[1707년]] 영국으로 귀환하여 [[1709년]]에 《뉴홀랜드 항해의 연속》(''A Continuation of a Voyage to New Holland'')을 간행했다.
 
=== 제3차 세계원정====
[[1708년]], 댐피어는 사략 선장 우즈 로저스의 듀크 호에 항해장으로 일했다. 이 항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1709년]] [[2월 2일]]에는 셀쿼크를 회수하고 원정에서 얻은 이익은 약 20만 파운드에 달했다. 그러나 댐피어는 자신의 몫을 받기도 전에, [[1715년]] 런던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