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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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익주목 [[유장]](劉璋)에 의해 [[효렴]](主簿孝廉)으로 발탁되어 그를 섬기게 되었으며, 이후 어복현(魚復)의 현장(長), 종사(從事), 장하사마(帳下司馬)를 거쳤다. 익주를 공격하는 [[유비]](劉備)를 구원하기 위해 [[장비]](張飛)가 형주로부터 진군하자, 유장에게 군사를 받아 덕양현(陽縣)의 맥하(陌下)에서 싸우다가 패하였다. 이후 유장이 유비에게 항복하자 유비를 섬기게 되었으며, 사금중랑장(司金中朗)으로 임명되어 농기구와 무기의 제조를 맡았다. 그 뒤 건녕(建寧)의 태수익주태수(益州太守)인 [[정앙]](正昴)이 현지의 호족 [[옹개]](雍闔)에게 살해되자 그 후임으로 익주태수(益州太守)가 되었으나, 옹개에게 붙잡혀 [[오나라]]로 압송되어 [[손권]](孫)에게 보내졌다.
 
이후 양국의 우호 관계를 위해 [[제갈량]](諸葛亮)이 [[등지]](鄧芝)를 오나라에 사자로 파견하였고, 장예의 석방 협상을 하여 그의 촉나라로의 귀환을 허락받았다. 손권은 장예가 촉나라로 떠나려고 할 때 한 번 이야기하였는데, 손권은 그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여 추격대를 보내 그를 뒤쫓아 오나라로 데려오게 하였다. 장예는 오나라를 떠나면서 어리석은 행세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고, 배를 탄 뒤 빠른 속도로 촉나라로 도망쳐 추격대를 따돌리게 되었다.
 
촉나라로 돌아온 이후 다시 중용되었으며, 참군(軍) · 익주치중종사(益州治中従事)가 되어 제갈량을 보좌하며 군무를 맡았다. [[227년]] 제갈량이 북벌을 위해 한중(漢中)에 주둔할 때, 장예는 야성교위(射校尉) · 유부장사(留府長史)로 임명되었다. 이후 장사 직분을 유지하면서 보한장군(輔漢軍)으로 승진하였고겸했고, [[230년]]에 세상을 떠났다.
 
{{토막글|삼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