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퐁 논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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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란은 [[오페라 부파]]를 칭송하는 지식인과 프랑스 오페라 양식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나뉘게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가인 [[장-자끄 루소]]와 [[Friedrich Melchior Grimm]], [[달랑베스]]와 [[백과사전파]](Encyclopédie)같은 지식 계급과 [[왕비]]가 프랑스 오페라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루소는 라모의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에 대해 합주가 너무 복잡하다, 화성이 너무 으리으리하다면서 '마치 끊어지지 않는 소음과 같다'고 비난했다. [http://www.kcaf.or.kr/basic/music/ch04/ch04-a-03-xx.html]
 
그 대척점에는 그 당대의 대표 작곡가인 [[장-필립 라모]]로 [[륄리]]에 의해 시작되고 전파된 [[프랑스 서정 비극]] 양식을 옹호하였다지지하였다. [[루이 15세와15세]]와 귀족과 음악가, 그리고 대부분의 청중이 라모의 [[프랑스 오페라]]를 지지하였다. 라모는 일련의 에세이로 자신의 작품의 정당함을 적으로 부터 방어하였고옹호하였고, 그만의 스타일로 계속해서 음악을 작곡하였다.
 
이 논쟁은 다시 프랑스음악과 이탈리아음악의 일반적인 특징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아르투지와 몬테베르디, 글루크와[[글룩]]와 [[피치니]], 한슬리크와[[한슬리크]]와 [[암브로스]] 등의 논쟁이었는데, 극장에서의 설전, 필전에 그치지 않고 결투가 벌어지는 등 가히 전쟁을 방불케 했다.[http://www.hosanna71.com/H.Story/12/12.htm]
 
이 음악적 논쟁은 결국 라모가 1764년 사망하면서 끝마치게 되었고 이 논쟁은 [[오페라 코믹]]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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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링크==
 
대구 음악 사랑 카페[ http://www.hosanna71.com/H.Story/12/12.htm]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출처[http출처http://www.kcaf.or.kr/basic/music/ch04/ch04-a-03-x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