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제 (동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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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96년]], [[손책]](孫策)이 [[왕랑]](王朗)을 쫒아내고 회계군(會稽郡)을 평정할 때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다. 이후 옛 왕랑의 잔당인 [[상승]](商升)이 손책에게 불복하자, 손책은 영녕현(永寧縣)의 장(長)인 [[한안 (후한)|한안]](韓晏)을 남부도위(南部都尉)에 배령하여 공격하게 한 뒤 한안을 대신하여 하제를 영녕현의 장으로 삼았다. 상승을 공격하게 한 한안이 패배하자, 손책은 하제를 남부도위에 임명했다. 하제는 잔여 세력을 격파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222년]], [[위나라]]가 오나라를 세 방면에서 침공하자, 양주(揚州) 방면으로 진격한 [[조휴]](曹休) 등을 [[여범]](呂範), [[서성 (오나라)|서성]](徐盛) 등이 동구(洞口)에서 막으려 하였으나, 여범이 이끄는 군대는 큰 폭풍우를 만나 병사 수천 명이 익사했고, 위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아 격파당했다. 하지만 하제는 [[장강]](長江)을 건너지 않은 채 신시(新市)의 수비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제는 항상 자신의 군대를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무장시켜 전투에 임했으며, 조휴 등은 이를 보고 두려워하여 물러났다. 이 싸움 후 후장군(後将軍)에 임명되었으며, 가절(仮節)을 받아 서주목(徐州牧)을 배령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