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칠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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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vensaintsinthebamboowood.jpg|350px|thumb|죽림칠현도]]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중국 [[위 (삼국 시대)|위]](魏) , [[진 (위진남북조)|진]](晉) 왕조 시절 [[완적]](阮籍) , [[혜강]](嵆康) , [[산도 (사람)|산도]](山濤) , [[향수 (사람)|향수]](向秀) , [[유영 (서진)|유영]](劉伶) , [[완함]](阮咸) , [[왕융 (서진)|왕융]](王戎)을 가리킨다. 정치 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을 주고받고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들이다.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이 그들의 근본 사상이었다.
 
“언제나 죽림 아래 모여 거칠 것 없이 술을 마셔, 죽림 7현이라고 불렀다”라고, [[남북조 시대|6조]] [[송 (남조)|송]]의 유의경(劉義慶)이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7인을 한 그룹으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일찍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 사상적 중심은 혜강과 완적의 두 사람이며, 다시 산도와 향수, 유영과 완함·왕융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죽림이란 방외(方外)의 땅, 즉 자연이란 뜻이다. 조씨의 위(魏)에서 사마(司馬)씨의 진(晉)으로의 정권 항쟁기에 스스로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죽림과 술에 자기도회(自己韜晦)하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