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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동탁 연합군]] ===
[[영제]] 때에, [[하진]](何進)의 부름을 받아 기도위로 임명되었고, 고향으로 돌아가 병사를 모으게 했다. 천여 명을 모아 성고로 돌아갔으나, 이미 하진은 죽었고, [[동탁]](董卓)이 중앙으로 들어왔다. 동탁이 난을 일으키리라고 보고 [[원소 (삼국지후한)|원소]](袁紹)에게 동탁을 습격할 것을 권했으나, 원소는 두려워하여 이를 따르지 않았다.
 
《삼국지》위서 권1 무제기에 따르면, 초평 원년(190년) 봄 정월, 제북상으로서 후장군 [[원술]](袁術), 기주목 [[한복 (후한)|한복]](韓馥), 예주자사 [[공주 (공서)|공주]](孔伷), 연주자사 [[유대 (후한)|유대]](劉岱), 하내태수 [[왕광 (후한)|왕광]](王匡), 발해태수 원소, 진류태수 [[장막 (후한)|장막]](張邈), 동군태수 [[교모]](喬瑁), 산양태수 [[원유 (후한)|원유]](袁遺)와 함께 군사를 일으켰다.
 
《삼국지》위서 권12 최모서하형포사마전에 주석으로 인용된 왕침의 《위서》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가 무리 2만 명, 기병 700명, 치중 50승 여를 모으고, 아우 [[포도 (후한) |포도]](鮑韜)와 함께 기오에서 거병한 [[조조]](曹操)와 호응하니, 조조는 원소와 함께 표를 올려 포신으로 파로장군을, 포도로 비장군을 대행하게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원소에게 귀의하고 있었으나, 포신은 조조가 당시 중국의 혼란을 진압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조조에게 말했다. 조조와 함께 형양에서 동탁과 싸워 패배해, 자신은 부상을 입고 아우 포도는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