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이 후세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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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이 후세인'''({{llang|ar|قصي صدام حسين|쿠사이 사담 후세인 알-티크리티}}, [[1966년]] [[5월 17일]] ~ [[2003년]] [[7월 22일]])은 [[사담
▲쿠사이 후세인({{llang|ar|قصي صدام حسين|쿠사이 사담 후세인 알-티크리티}}, [[1966년]] [[5월 17일]] ~ [[2003년]] [[7월 22일]])은 사담 후세인과 그의 첫번째 아내, [[사지다 탈파]]의 차남이다. 또한 그는 [[우다이 후세인]]의 동생이다. 형과는 달리 온건파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는 군사령관의 딸과 결혼했고 세 아들이 있는데 그 중 무스타파 후세인([[1989년]] [[1월 3일]] ~ [[2003년]] [[7월 22일]])은 미군과 총격전에서 그의 아버지와 함께 살해되었다. 다른 두 아들의 행방은 알 수 없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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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이 후세인은 [[1991년]] 걸프전의 여파에있는 시아파의 봉기를 분쇄에서 아주 중요한 선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또한 이라크의 남부 늪의 지방이 가질 생각으로 늪을 파괴했다. 이들 늪의 파괴는 습지를 자신들의 고향으로 만든 시아파 습지 아랍인들 사이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이 파괴가 시아파의 반란 참여에 대한 보복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정부는 습지 파괴가 작업이 가능한 농지를 생산하기 위한다고 밝혔습니다.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하여 사담 후세인은 바그다드 - 티그리트 영역과 이라크의 군사 네 영역 중 하나를 방어하기 위해 쿠사이에게 명령했다. 2003년 3월 17일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의 아버지 사담과 우다이, 쿠사이 형제에게 48시간 안에 이라크를 떠나도록 명령하였다.
== 말년 ==
2003년 7월 22일에 미군
이 무렵 사담의 딸들, 즉 쿠사이의 여동생들은 이라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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