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마운트배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작위에 쓰이는 마운트배튼오브버마는 버마의 마운트배튼이 아니라, 팔마데마요르카 공작 부인 인판타 크리스티나처럼 붙여서 써야할듯...데나 오브나 같은 뜻이니까요
(작위에 쓰이는 마운트배튼오브버마는 버마의 마운트배튼이 아니라, 팔마데마요르카 공작 부인 인판타 크리스티나처럼 붙여서 써야할듯...데나 오브나 같은 뜻이니까요)
루이즈의 외가는 헤센 대공가였다. 외할버지는 헤센의 대공이었던 루드비히4세였고 외할머니는 영국의 앨리스 공주였다. 이때문에 루이즈 역시 수많은 왕가와 친척관계였다. 루이즈의 큰 이모인 엘리자베트는 러시아의 대공비가 되었으며, 둘째이모인 이레네는 독일의 왕자비가 되었다. 외삼촌인 에른스트 루드비히는 헤센의 대공이었으며, 막내 이모인 알릭스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후가 된다.
 
루이즈의 형제들로는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비이자 영국의 필립공의 어머니인 앨리스, 2대 밀포드 헤이븐 후작인 조지 마운트배튼경, 버마의 마운트배튼마운트배튼오브버마 백작인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이마운트배튼 경이 있다.
 
=== 어린시절 ===
 
=== 결혼 ===
[[파일:Gustaf6AdolfGrave-1.jpg|200px|thumb|left|<small>[[코넛 공녀 마거릿]], [[구스타프 6세 아돌프]], 루이즈 마운트배튼의 무덤</small>]]
 
34살의 루이즈는 결혼에 대해 기대하지 않았고 가족들 역시 루이즈의 결혼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루이즈의 어머니인 빅토리아는 루이스가 상속녀인 에드위나 에쉴리와 결혼하자, 루이스가 후에 노처녀로 늙어가서 경제적으로 어려울 누나 루이즈를 도울수 있을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루이즈 역시 조카들인 그리스 공주들의 샤프롱으로 따라다니면서 조카들의 신랑감을 찾고 있었다.
루이즈와 구스타프 아돌프는 1923년 11월 3일 성 제임스 궁전의 로열 채플에서 결혼했다.
 
루이즈는 결혼초 임신했다가 딸을 사산한후사산한 후 더이상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 스웨덴 ===
 
루이즈가 결혼했던 때, 스웨덴 궁정에서는 중심이 되는 여성이 없었다. 루이즈의 시어머니였던 바덴의 빅토리아는 건강이 좋지 못해서 자주 외국에 나가있었으며, 구스타프 아돌프는 부인인 [[코넛의코넛 공녀 마거릿]]을 잃고 난 뒤었고, 구스타프 아돌프의 동생 빌헬름 왕자는 부인인 러시아의 마리야 표도로브나 여대공과 이혼한 상태였다. 결국 루이즈는 결혼과 동시에 왕실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궁정을 이끌어야 했다. 다행히 루이즈는 다른 바텐베르크 가문 사람들처럼 언어에 소질이 있었고, 스웨덴어를 빨리 익힐수 있었고 여러가지 사업에 나아가 연설을 하는등의 활동을 했다.
 
1950년 루이즈의 시아버지인 구스타프5세가구스타프 5세가 사망하자, 루이즈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소심했던 루이즈는 자신이 "폐하" your(Your Mejesty")라고 불리는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더 재미난 이야기가 조지6세의 장례식때 있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루이즈앞으로 "스웨덴 왕비용 의전 차량"이 도착했다. 문제는 루이즈가 그 차량이 자신을 위한 차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루이즈는 스웨덴에서 인기 있는 왕비가 되었다. 남편 구스타프6세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마찬가지로 소탈한 성격이었으며 노부부는 자주 경호원 없이 단 둘이서 궁전 밖을 산책하고는 했다.
 
루이즈는 1965년 3월 7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 칭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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