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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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경'''(韓尙敬, [[1360년]] ~ [[1423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는 숙경(叔敬) 또는 경중(敬仲), 호는 신재(信齋), 시호는 문간(文簡), 군호는 서원군(西原君)이다.
 
호부상서 한공의(韓公義)의 손자,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문경공(文敬公) 한수(韓脩)의 아들, 길창군(吉昌君) 권적(權適)의 외손으로 태어났다. 음직으로 사선 서령(司膳署令)에 임명되었다가 [[1382년]] 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예의 좌랑(禮義佐郞)이 되었고, 이후 우정언(右正言), 전리 정랑(田理正郞), 예문 응교(藝文應敎), 공부 총랑(工部摠郞), 종부 령(宗簿令) 등을 거쳐 [[1392년]]에 밀직사(密直司) 우부대언(右副代言)이 되었다. [[음력 7월 17일|7월 17일]] 조선 개국에 참여하였고, 9월 27일에 [[조선의 개국공신|개국 3등공신]]에 추록되었다. [[중추원]] [[도승지]],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를로 있다가 [[충청도]]·[[경기도#경기도의 역사#조선시대|경기도]]·[[황해도#역사#고대|풍해도]]·[[강원도]] 등의 [[관찰사]]를 지냈고, 내직으로 돌아와서는 공조 판서, [[대사헌]],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이조 판서 등을 지냈다. [[1415년]]에 서원 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지고 [[우의정]]으로 승진했으며, [[1416년]] [[영의정]]에 올랐다. 평소에 풍질(風疾)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상을 당해 예를 극진히 차리다가 병이 악화되어 [[1423년]]에 죽었다. 아들은 한혜(韓惠) 하나를 두었다.
호부상서 한공의(韓公義)의 손자,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문경공(文敬公) 한수(韓脩)의 아들, 길창군(吉昌君) 권적(權適)의 외손으로 태어났다.
 
음직으로 사선 서령(司膳署令)에 임명되었다가 [[1382년]] 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예의 좌랑(禮義佐郞)이 되었고, 이후 우정언(右正言), 전리 정랑(田理正郞), 예문 응교(藝文應敎), 공부 총랑(工部摠郞), 종부 령(宗簿令) 등을 거쳐 [[1392년]]에 밀직사(密直司) 우부대언(右副代言)이 되었다. [[음력 7월 17일|7월 17일]] 조선 개국에 참여하였고, 9월 27일에 [[조선의 개국공신|개국 3등공신]]에 추록되었다. [[중추원]] [[도승지]],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를로 있다가 [[충청도]]·[[경기도#경기도의 역사#조선시대|경기도]]·[[황해도#역사#고대|풍해도]]·[[강원도]] 등의 [[관찰사]]를 지냈고, 내직으로 돌아와서는 공조 판서, [[대사헌]],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이조 판서 등을 지냈다. [[1415년]]에 서원 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지고 [[우의정]]으로 승진했으며, [[1416년]] [[영의정]]에 올랐다. 평소에 풍질(風疾)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상을 당해 예를 극진히 차리다가 병이 악화되어 [[1423년]]에 죽었다. 아들은 한혜(韓惠) 하나를 두었다.
 
<nowiki>{{조선의 개국공신}}</no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