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프랑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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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파울리노 에르메네힐도 테오둘로 프랑코 이 바아몬데'''(Francisco Paulino Hermenegildo Teódulo Franco y Bahamonde, [[1892년]] ~ [[1975년]])는 [[스페인]]의 군인이자 독재 정치가로,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서 출생하여, 육군 사관 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받았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장군이 되어 차차 세력을 강화하였다. 1931년의 공화 혁명 때 공화 정부 쪽에 가담하였으나, 얼마 후 거기서 터전을 닦아 1936년 총선거에 인민 전선파가 승리하자 중앙의 정치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1936년]] [[모로코]]인 용병을 포함한 자신의 직속 군대를 이끌고 [[인민전선]] 정부에 반대해 봉기를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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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에서 그는 국민 정부의 주석 및 군 총사령관이 되었으며, 독일·이탈리아의 도움으로 [[1939년]] 수도 [[마드리드]]가 함락되었다. 그 해 8월 스스로 에스파냐 파시스트 당의 당수가 되었으며 "나는 오직 신과 역사 앞에서만 책임을 질뿐이다"라는 말과 함께 막강한 독재체재를 구축하였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같은 [[파시스트]]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에 동맹하지 않았으나, 실제로는 여러가지로 측면 지원하였으며, 전세가 변함에 따라 모호한 입장을 취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스페인은 프랑코에 의해 유일한 군사 독재국으로 남았다. [[1947년]] 실시된 국민 투표에서 프랑코 종신
프랑코는 [[축구]]에도 큰 관심을 가져 [[스페인]]의 축구 팀 [[레알 마드리드]]를 적극 지원하기도 했으나 너무 레알 마드리드의 광팬인 나머지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격인 [[바르셀로나 FC]]를 강력하게 탄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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