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망파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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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1=조조
|교전국2=유비
|지휘관1=[[하후돈]] <br/> [[우금 (문칙) |우금]] <br> [[이전 (위나라) |이전]] <br> [[하후란]]† <br> [[한호 (위나라) |한호]]
|지휘관2=[[유비]] <br /> [[제갈량]] <br /> [[관우]] <br> [[장비]] <br> [[조운 (촉한의 무장촉한)|조운]] <br> [[관평]] <br> [[유봉]]
|병력1=10만 명
|병력2=3000 ~ 5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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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의 묘사 ==
=== 배경 ===
[[후한]] 말기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던 유비는 [[201년]] [[여남 전투]]에서 조조에게 대패해 근거지를 잃고 돌아다니다 형주 자사 [[유표 (후한)|유표]]에게 의탁해 신야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마휘]]의 추천으로 [[제갈량]]을 찾아가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받아드리는데 성공한다.
 
한편 조조는 북방이 모두 평정되자 삼공의 직책을 없애고 승상인 자신이 모두 겸하였고 그 아래로 부하 [[모개]]를 동조연, [[최염]]을 서조연, [[사마의]]를 문학연으로 삼아 자신의 친위 세력들도 문관들을 갖추어 놓고 남쪽으로 진군할 준비를 했다.
 
그리하여 조조는 부하 [[하후돈]]을 도독으로 삼고 [[우금 (문칙) |우금]], [[이전 (위나라) |이전]], [[하후란]], [[한호 (위나라) |한호]]를 부장으로 삼아 10만 대군을 주어 박망성으로 가 신야를 엿보라고 명했다.
 
=== 전투 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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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후 관우, 장비를 비롯해 조운, 관평, 유봉 등 전투에 나갔던 장수와 군사들이 신야성으로 합류해 들어왔고 제갈량이 전리품을 나누었다.
 
이에 조조는 직접 50만 대군을 이끌고 유비와 형주 정벌에 나서게 되고 중간에 조조와 결탁한 유표의 아들 [[유종 (후한) |유종]]과 채씨 세력과의 대립 등으로 유비는 조조와의 [[장판 전투]]에서 패하게 된다.
 
{{삼국지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