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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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소 (삼국지)|원소]] → [[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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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원소 (
건안(建安) 4년([[199년]]), [[전풍]](田豊)
허유는 예전의 명성과 원소와의 개인적인 친교로 인해 높은 자리에 있었으나 그에 걸맞은 공을 세우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탐욕스럽고 교만한 성품으로 사방에 적을 두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허유는 원소을 배신하고
《조만전(曹瞞傳)》에 따르면 조조는 코를 베인 채 사로잡힌 상황에서도 뜻을 굳히지 않는 순우경을 아깝게 여겨 처형을 그만두려 하였으나, 허유가 '''"거울을 보면 당신을 원망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기 때문에 조조는 순우경을 처형하였다.<ref>다만 《삼국지》 본문에는 조조의 부장 [[악진]](樂進)이 순우경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
허유의 투항을 두고 사서들은 그 원인을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건안]](建安) 5년([[200년]]), [[관도 전투]] 때 허유는 원소에게 군사를 양분하여 [[조조]](曹操) 측의 본거지 허(許)를 습격하고, [[헌제]](獻帝)를 데려오자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ref>《한진춘추(漢晉春秋)》</ref>
*[[순욱]](荀彧)은 허유는 탐욕스러워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로, [[심배]](審配)와 [[봉기]](逢紀)는 허유 일가의 범죄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였고, 과연 허유의 가족이 법을 어겨 심배에게 체포되자 허유가 투항하였다.<ref>《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순욱전(荀彧傳)</ref>
*허유는 탐욕스러운 자로, 원소가 자신의 재물욕을 채워주지 못하자 투항하였다.<ref>《삼국지》 위서 무제기(武帝紀)</ref>
이와 같이 제각각 다르게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한가지로 생각될 수 있다.
탐욕스럽고 안하무인이었던 허유는 그 성품 때문에 사방의 적을 두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부정이 적발되어 일족이 체포되었고
단순히 헌책이 거절당했다고 분노해서 투항하는 사람은 없다.
허유의 책략은 조조군의 승리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관도대전의
건안 9년([[204년]]), 조조는 업을 공략한 뒤 심배를 죽였다. 허유는 업의 동문을 통과할 때 또다시 “이 남자(조조)는 나를 손 안에 넣지 않았더라면 이 문을 출입하지도 못했을 것이다.”라고 좌우의 사람들에게 말하며 자만했다. 이 말은 조조에게 밀고되었고 이윽고 허유는 처형되었다.
== 인물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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