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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은 천리교도 2백 여명을 상인으로 변장시킨 뒤, [[북경]] 성내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두 부대로 나누어, 밀통하던 환관의 안내를 받으며 자금성 안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한 부대는 수상하게 여긴 문지기들에 의해 저지되어 문을 통과하지 못하였고, 다른 부대 80여명만 자금성 안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자금성 안으로 들어온 천리교도들은 닥치는 대로 살상을 저지르며 내정 근처 융종문 가까이에 이르렀다. 마침 가경제는 열하로 피서를 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사하였으나, 자금성 안에는 황자(훗날 [[도광제]])가 남아 있었다. 청나라 조정과 황실은 발칵 뒤집혔으나, 도광제가 직접 근위병을 이끌고 맞서 싸워 천리교도들을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천리교도들이 쏜 화살촉이 융종문의 현판에 박혔는데, 아직까지 남아 있다.<ref name="test">진병팔, <<자금성, 살아 있는 중국이야기>>, 106쪽~107쪽</ref>
 
== 결과 ==
 
자금성 습격사건이 실패한 이후, 임청을 비롯한 천리교도들과, 이들과 내통했던 환관들은 모조리 붙잡혀 처형당했다. 자금성으로 환궁한 가경제는 급기야 백련교를 사교로 규정지었다. 이로써 난은 진압되었지만, 청나라 황실의 권위를 떨어뜨린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references />
 
[[분류:중국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