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리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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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코카서스]]의 [[캅카스 이베리아|이베리아]]라고도 불림)와 [[로마 제국]]의 식민도시로 출발하였는데, 이후에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하([[1614년]]~[[1878년]])에 있다가 [[19세기]] 말인 [[1878년]]에 와서야 비로소 [[러시아]] 영토가 된다.
 
러시아 [[10월 혁명]]이 발발한 후에 서구 여러 나라가 신생 [[소비에트]] 정부에 개입하게 되는데, 이 지역은 [[1918년]]~[[1920년]]까지 [[영국]]과 [[터키]]의 지배하게 있게 된다. [[1921년]]에 [[적-백 내전]]에서 승리한 적군 정부(소비에트 정부)에게로 다시 이 지역이 귀속된다. 이후 소비에트 시대에는 [[조지아 (국가)|조지아]]에 속한 아자리야 자치 공화국이 된다. 그런데 이 때, 이 아자리야 지역은 종교, 문화적으로 다른 조지아 지역과 다른 점이 많으므로 폭넓은 자치권을 부여하여야 한다는 귀속 조건이 [[카르스 조약]](treaty odof Kars)에 의하여 확인 되었고, 이에 따라 소비에트 시절에도 대체로 비교적 많은 자치권을 부여 받았다.
 
조지아의 독립 후 [[아슬란 아바시제]]의 지배하에 [[1991년]]-[[1993년]]의 조지아 내전은 대체로 피해가고 그 후로 조지아 정부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으며 사실상의 독립국으로 조지아 내에서 비교적 안정되고 부유한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아바시제는 거대 밀매 조직을 통하여 자금을 조성하는 등 [[조직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았고 독재 정치를 통해 인권을 탄압하였다.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 때에는 조지아 정부는 이러한 아자리야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으나 [[2003년]] [[장미 혁명]]으로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대통령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어 아자리야가 중앙정부의 지배하에 들어오도록 압력이 가해졌다. [[2004년]] [[5월]] 아바시제는 사카슈빌리의 최후 통첩과 독재에 항거하는 아자리야 주민들의 시위에 못이겨 [[러시아]]로 망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