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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5월 25일]] [[제1공화국]]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의 독재에 성토하기 위해 야당의 국민주권옹호 투쟁위원회 주최로 서울 시민에 약 20만여 명이 모인 야당 시국강연회에서 전무후무한 여당과 결탁한 폭력배들에 의한 [[장충단집회 방해사건]]이라는 정치테러사건이 일어났다.
 
[[1971년]]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전 4월 18일 장충단공원에서 약 100만 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김대중 후보와 박정희 후보에 유세대결이 유명하기도 하다.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김대중]]은“[[김대중]]은 선거에서 [[박정희]]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후락]]에게 졌다.”라고 말했다. 이후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발효되었다.<ref>이계성 논설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11/h2009110121584724440.htm (지평선/11월 2일) 유신 권력의 2인자] [[한국일보]] 2009년 11월 1일 작성</ref><ref>김대홍 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01644 넌 족발 뜯으러 가니? 난 역사 보러 가는데] [[오마이뉴스]] 2008년 1월 18일 작성</ref>
장충단의 처음 위치는 유실되었으나, 지금의 장충단공원 남쪽 끝인 어린이야구장 건너편 근처로 추정되고 있다. 공원 입구에 남아 있는 장충단비의 ‘장충단’(奬忠壇)이라는 글씨는 [[대한제국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쓴 것이다. 비 뒷면에는 [[민영환]]의 글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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