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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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196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499955 노컷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1974년]] [[멘로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드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공군사관후보생|공군장교]]로 군복무를 마쳤으며 [[1981년]] 부친 [[김종희]]의 사망으로 인해 뒤를 이어 젊은 나이에 회장에 취임하여, 한화그룹의 규모를 수십 배로 키워냈다. [[1996년]]에 [[서강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벌 총수로는 처음으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구속되었다.<ref>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3&article_id=0000413232&section_id=101&menu_id=101 '보복 폭행'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구속], 뉴시스, 2007년 5월 12일.</ref> 1심 공판에서는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하였다.
 
한∙미교류협회 회장, UN한국협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 부회장, 국제복싱발전재단(FBB)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를 10년 넘게 후원하면서 2009년 3월 예술의전당으로부터 종신회원증을 받았고<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1991720 한겨레,김승연 회장, 예술의전당 종신회원]</ref>, 2009년 11월에는 한국경영사학회 제16회 창업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로버트 김]]을 후원한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5110611041701826&outlink=1 서울경제, 김승연 한화회장 '로버트 김' 후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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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와 혼맥==
누나 김영혜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차남이자 [[제일화재]] 회장인 [[이동훈 (1948년)|이동훈]]과 결혼하였다. 또한 남동생이자 전 빙그레의 회장인 [[김호연]]의 장인은 [[김구]] 선생의 둘째 아들이며 교통부장관과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신]]이다. 본인은 내무장관과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정치인 [[서정화 (1933년)|서정화]]의 장녀 서영민과 [[1982년]]에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 아들 [[김동관]]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 [[공군]]사관후보생 117기 [[통역장교]]로 선발되어 공군작전사령부 기획조정실 통역 장교로 복무하였으며 현재 (주)한화의 차장으로 입사하여 경영 수업을 받고 있고, 둘째 아들 [[김동원 (1985년)|김동원]]은 [[예일대학교]]에서 동아시아 학과에 재학중이다. 셋째 아들 [[김동선 (승마 선수)|김동선]]은 승마 명문교인 미국 터프트 스쿨을 졸업하고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명문대인 다트머스대학교에서 공부중이며 [[승마]] 선수로, [[2006년 아시안 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하였다. 둘째 아들 동원이 [[2007년]] 술집 종업원과 몸싸움을 하여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논란==
 
===1993년 외환관리법 위반===
“록키”로 잘 알려진 유명배우 [[실베스타 스텔론]]의 저택을 계열사인 태평양 건설이 1979년부터 1983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받은 650만 달러를 빼돌려 470만 달러에 구입한 혐의로 11월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57일간 실형을 살았다.<ref>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704/h2007042918505722000.htm 김승연 회장-수사기관 악연]</ref>
 
===2002년 외환관리법 위반===
2002년 대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던 중 미국 LA에 체류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여 논란에 휩싸였다.<ref>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5891.html 김 회장 ‘사고’ 뒤 모든 일정 접고 칩거]</ref>
 
===유산 상속 다툼===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의 긴 유산 다툼을 벌였다. 창업주인 부친 김종회 회장이 81년 타계하면서 유언장을 남기지 않아 당시 29세 나이로 김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이어받았는데 동생이 그룹 지분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며 무려 31차례나 재판을 진행했다. 이들은 1995년 할머니의 장례식 때 만나 재산분할에 합의했다.<ref>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920523582&code=41121111 검찰,법원 이어 경찰까지…김승연 회장의 질긴 악연]</ref>
 
===술집 종업원 폭행===
2005년 3월 21일, 김승연 회장이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서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업원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지시한 뒤 술병으로 머리를 내리쳤다.<ref>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747 김승연 회장, 2년 전에도 술집 종업원 폭행]</ref>
 
==보복 폭행 사건==
===대략적 개관===
2007년 3월 8일 새벽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 김씨가 술집 종업원과 몸싸움을 하여 김씨가 눈에 부상을 입었다. 3월 8일 오후 김승연은 경호원 17명을 대동하고 자신의 아들과 몸싸움을 벌인 술집 종업원을 청계산으로 끌고가 보복성 집단 폭행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3월 8일 밤 김승연 씨와 아들 김씨, 경호원들은 김씨와 다투었던 종업원들이 일하는 술집으로 재차 찾아와 다시 폭행을 가하였다. 2007년 3월 9일 인근 주민이 신고를 하였으나, 술집 종업원들이 “우리끼리 다투었다”라고 하여 출동한 경찰이 철수하였다. 다음날 경찰은 사건 경위에 대해 조사하였지만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다. 그러나 4월 24일 일부 [[언론]]에 재벌 아들의 폭행 사건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다.<ref>
[http://news.media.daum.net/society/others/200704/27/hani/v16536095.html 한겨레 2007년 4월 27일자 기사]</ref> 경찰은 4월 28일자로 정식 수사에 착수했으나, 김승연이 경찰에 출두하지 않고 김승연의 아들이 출국 중이어서 수사가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ref>[http://news.media.daum.net/society/affair/200704/28/segye/v16549120.html 세계일보 2007년 4월 28일자 기사.]</ref>-->
 
===초기의 엇갈리는 주장===
술집 종업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용문2|청계산의 한 창고로 끌고가 수십분간 비인간적인 폭행을 가했으며, 술집 사장의 따귀를 때리고 쇠파이프, 몽둥이, 심지어는 총으로 보이는 물건까지 들고와 비윤리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김승연 회장이 경호원이라 주장하는 인물들은 경호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경찰에 알리면 죽게될 것이라고 협박을 가했다.}}
 
이에 대해 김승연 회장 측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용문2|청계산으로 끌고 갔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비인간적인 폭행이 아닌 훈계조로 머리를 쥐어 박은 적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흉기는 없었으며, 회사 경호원 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후에 김회장은 검찰에서는 주먹으로 폭행하였지만 흉기 등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법원에서는 일부 흉기를 이용한 폭행은 있었다는 등 진술을 번복했다.
 
===김승연과 한화그룹의 입장 표명===
2007년 4월 27일,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김승연 회장은 여론과 수사가 심상치 않게 흐르자, 개인적인 일로 물의를 일으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지금 제기되는 사안들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리라 생각하며, 수사에 적극 헙조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ref>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710035 중앙일보 2007년 4월 28일자 기사]</ref> 한편, [[한화그룹]]의 한 직원은 대한생명 인수를 계기로 '신뢰, 존경, 혁신'을 상징하는 새로운 기업 로고를 발표하는 등 회사 이미지 개선 작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로 큰 타격을 받을 것 같다고 밝혔다.<ref>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710035 중앙일보 2007년 4월 28일자 기사]</ref>
 
2007년 월 5일,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처음으로 임원진들에게 심경을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인용문2|사법절차를 따르기보다 남자로서 사과를 받게 한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일을 크게 만들고 말았다. 무척 후회스럽다. 둘째가 피투성이가 돼 집에 들어왔는데 자초지종을 듣고 격정을 억누르지 못했으며, 아들 말대로 경찰에 고소하고 사법처리에 맡겼으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 29세에 그룹 회장이 된 이래 지금이 제일 어려운 시기인 것 같다.}}
 
===정치권, 법조계 입장===
[[한나라당]]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은 27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복성 폭력인 만큼 사회정의 확립 차원에서 철저히 수사해야 한고 표명했다. 또한,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도 재벌 총수가 사람을 때려도 된다는 세상이 돼서는 안되며, 당국은 그런 분일수록 진상을 밝혀 다시는 국민 앞에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도 [[경찰]]의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자체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 각종 의혹을 둘러싼 객관적 사실을 확인키로 한다고 밝혔다.
 
===구속===
[[2007년]] [[5월 12일]] 남대문 경찰서에 구속되었다.
 
===공판===
[[2007년]] [[7월 2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ref>
[http://news.naver.com/hotissue/ranking_read.php?section_id=102&ranking_type=popular_day&office_id=001&article_id=0001683786&date=20070702&seq=4 `보복폭행' 김승연 회장, 징역 1년6월 실형, 연합뉴스, 2007년 7월 2일.]</ref> 1심 법원은 범행의 발단 및 합의 등 유리한 정상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위나 재력 및 조직을 내세워 사적 보복을 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행위라는 점을 중시하고 이를 위반한 피고인들의 범행에 대하여 법질서 위반의 정도를 높게 평가하여<ref>
[http://seoul.scourt.go.kr/dcboard/DcNewsViewAction.work?seqnum=2156&gubun=44 서울 중앙지방법원, 우리법원 주요판결, 2007년 7월 2일.]</ref> 피해자와 합의한 폭행사건임에도 중형을 선고하였다. 김승연 회장은 이에 대해 항소하였고, 항소심 법원(부장판사:김득환)은 김 회장에 대해 징역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했다.<ref>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08&article_id=0000827518&section_id=102&section_id2=257&menu_id=102 김승연회장 항소심서 집행유예 선고], 머니투데이, 2007년 9월 11일.]</ref>
 
 
 
== 가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