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스트 쇼송: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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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그림:Chausson.jpg|thumb]]
'''에르네스트 쇼숑'''(Ernest Chausson, [[1855년]] [[1월 20일]] ~ [[1899년]] [[6월 10일]])은 [[파리 시]]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작곡가다. '프랑키스트'의 주요 멤버로서 [[국민음악협회]]의 창립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던 쇼숑은 프랑크의 순수절대 음악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독자적인 색채를 만들어 나갔는데, 그의 악풍(樂風)은 감각적으로 날카롭고, 우수에 찬 것이 많으며 또 자연에 대한 세련된 감수성이 넘쳐 있다. 음은 선명하고 아릅다고 정서는 청순하여 깊은 감동을 주는데, [[가극]], [[피아노곡]], [[가곡]], [[교향곡]] 등 모든 분야의 작품 중,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시곡]]》(詩曲)은 특히 유명하다.
 
== 생애 ==
어려서는 법률을 공부했으나, 이에 회의를 느껴 음악가로서는 다소 늦은 감이 있는 25세([[1880년]])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공부를 시작한다. 이러한 경로는 마치 음악가가 되기 위한 한 통과의례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로베르트 슈만]], [[루이 헥토르 베를리오즈]],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등의 숱한 음악가들이 법률이나 의학 또는 그 밖의 다른 길을 걷다가 결국은 음악에 대한 정열과 미련으로 음악가의 험난하고도 어려운 길을 택하고 있기 때문인데, Ernest Chausson 역시 같은 경로를 되밟으며 음악에 대한 그의 길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어려운 결단으로 일단 음악의 길을 선택한 쇼숑은 파리 음악원에서 [[쥘 마스네]](Jules Massenet)와 [[세자르 프랑크]](Cesar Franck)에게 음악수업을 받으면서 프랑크 학파의 전형적인 작곡가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1886년]]에 [[뮌헨]]과 [[바이로이트]]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을 접하고 강한 인상을 받아 10년동안의 작업으로 오페라 "《[[아르튀 왕]]》"을 완성하였다. 같은해에 쇼송은 국민음악운동 단체인 [[국민음악협회]]의 서기로 1896년까지 활동하였으며 이와 함께 정력적인 작곡활동도 펼쳤다. 그러나, 비교적 젊은 나이인 44세때인 [[1899년]] [[6월 10일]] [[자전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 작품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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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프랑스의 작곡가|쇼숑, 에르네스트]]
 
[[en:Ernest Chausson]]
[[ca:Ernest Chausson]]
[[da:Ernest Chausson]]
[[de:Ernest Chausson]]
[[en:Ernest Chausson]]
[[fi:Ernest Chausson]]
[[fr:Ernest Chausson]]
[[he:ארנסט שוסון]]
[[it:Ernest Chausson]]
[[nl:Ernest Chausson]]
[[ja:エルネスト・ショーソン]]
[[nl:Ernest Chausson]]
[[no:Ernest Chausson]]
[[pl:Ernest Chausson]]
[[fi:Ernest Chausson]]
[[he:ארנסט שוסו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