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히틀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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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하인츠" 히틀러'''({{llang|de|Heinrich "Heinz" Hitler}}), [[1920년]] [[3월 14일]] ~ [[1942년]])는 [[알로이스 히틀러 주니어]]의 자식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조카이다. [[알로이스 히틀러 주니어]]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헤트비히 하이데만({{llang|de|Hedwig Heidemann}})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돌프 히틀러]]를 저주한 다른 사촌인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와는 달리 하인츠는 히틀러와 [[나치]]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아돌프도 그를 관심있게 주시하였다. 하인츠는 독일 국방군의 엘리트 군사아카데미인 국가정치연구학회({{llang|de|Nationalpolitische Erziehungsanstalten, NAPOLA}})에 참가했으며, 장교에 감명을 느껴 국방군에 입대해 [[1941년]] 제 23 포츠담 포병여단에서 통신 부사관으로 근무를 시작했고, 바르바로사 작전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알로이스 히틀러 주니어]]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헤트비히 하이데만({{llang|de|Hedwig Heidemann}})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돌프 히틀러]]를 저주한 다른 사촌인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와는 달리 하인츠는 히틀러와 [[나치]]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아돌프도 그를 관심있게 주시하였다.
[[1942년]] [[1월 10일]], 하인츠는 전방 위치의 통신시설을 복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히틀러는 그가 좋아하던 사촌인 하인츠가 위험한 전방에서 복무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 임무에 대해 상당히 걱정을 하였다고 하고, 하인츠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포로로 붙잡혀 모스크바의 부츠카 수용소로 이전되었고, 여러 달에 걸친 심문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2년]]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인츠는 독일 국방군의 엘리트 군사아카데미인 국가정치연구학회({{llang|de|Nationalpolitische Erziehungsanstalten, NAPOLA}})에 참가했으며, 장교에 감명을 느껴 국방군에 입대해 [[1941년]] 제 23 포츠담 포병여단에서 통신 부사관으로 근무를 시작했고, [[바르바로사 작전]]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1942년]] [[1월 10일]], 하인츠는 전방 위치의 통신시설을 복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파견되었는데 히틀러는 그가 좋아하던 사촌인 하인츠가 위험한 전방에서 복무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 임무에 대해 상당히 걱정을 하였다고 하고, 하인츠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포로로 붙잡혀 모스크바의 부츠카 수용소로 이전되었고, 여러 달에 걸친 심문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2년]]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그는 포로로 붙잡혀 모스크바의 부츠카 수용소로 이전되었고, 여러 달에 걸친 심문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2년]]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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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오스트리아 사람|히틀러, 하인츠]]
[[분류:히틀러 가]]
[[분류:살해된암살된 사람]]
 
[[cs:Heinrich Hit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