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브라질 쿠데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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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브라질 쿠데타'''는 1964년 3월 31일 밤 브라질 군부가 주앙 고우라르트 대통령에 대해 감행한 쿠데타이다. [[주앙 고울라르트]](Jango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짐)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자니우 쿠아드로스]] 정부의 부통령이었는데, 1961년 콰드로스가 사임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1963년 고울라르트는 국민 투표를 실시해 재선됐다. 그의 개혁과 1963년의 선거는 냉전하에서 사회주의로 비쳐져 우익세력과 군부를 자극했고, 쿠데타의 원인이 됐다. 1964년 3월 31일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정부는 1985년까지 존속했다. 이는 냉전의 일부분으로서, 공산주의의 위협에 반응한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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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MuricyMourao.jpg|thumb|right|안토니우 카를로스 무리시 (왼쪽)과 올림피우 모우랑 필류 (오른쪽)]]
 
1964년 3월 31일 오전 1시, 올림피우 모우랑 필류(Olímpio Mourão Filho) 육군 제4군사령관이 휘하 부대에 히우 지 자네이루를 향해 이동하라고 명령했다.<ref>[http://www.cpdoc.fgv.br/nav_jgoulart/htm/biografias/Olimpio_Mourao_Filho.asp Olímpio Mourão Filho] Fundação Getúlio Vargas: Centro de Pesquisa e Documentação de História Contemporânea do Brasil. Retrieved on August 20, 2007.</ref> 이 부대 이동은 육군참모총장 카스텔류 브랑쿠와 아마우리 크루엘 육군 재2군사령관 등 다른 장군과 사전 논의 없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부대 이동이 전격으로전격적으로 이루졌기에, 진압군측에서 대처를 제대로 못 해 쿠데타가 곧 성공할 것으로 보였다. 크루엘 <ref>{{cite book |last=Gaspari |first=Elio |authorlink=Elio Gaspari |title=A Ditadura Envergonhada |year=2002 |publisher=Cia. das Letras |location=São Paulo |isbn=8535902775 |pages=68–69}}</ref>
 
이 날 아침, 카스텔류 프랑쿠는 히우 지 자네이루로 향하는 모우랑의 진격에 대해 두 차례 멈추라고 명령했다. 비슷한 시간 진격 소식이 주앙 고우라르트의 군사 참모, 아르게미루 아지스 브라지우 장군에게 도달했다. 이 때, 그는 이 쿠데타를 멈출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다.<ref>{{cite book |last=Gaspari |first=Elio |authorlink=Elio Gaspari |title=A Ditadura Envergonhada |year=2002 |publisher=Cia. das Letras |location=São Paulo |isbn=8535902775 |pages=69–70}}</ref> 이 후 몇몇 소규모 군사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크루엘 장군이 진압을 돕지 않고 있었다.<ref>{{cite book |last=Gaspari |first=Elio |authorlink=Elio Gaspari |title=A Ditadura Envergonhada |year=2002 |publisher=Cia. das Letras |location=São Paulo |isbn=8535902775 |pages=80–8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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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주앙 고울라르트는 히우 지 자네이루를 떠나 수도 브라질리아로 떠나 쿠데타를 진압해보려고 했다. 같은 시기, 크루엘 장군의 육군 제2군은 상파울루와 히우 지 자네이루 사이에 있는 발레 두 바라이바로 이동하고 있었다이동했다. 브라질 최남단에서 육군 제1군만오직 아르투르 다 코스타 에 시우바는 그의 시우바 장군의 지휘를 받고,받는 제1군만 히우 지 자네이루에 남아 있었다. 아르투르 다 코스타 에 시우바는 항복 요청을 받자, 크루엘 장군과 상황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아르투르 다 코스타 에 시우바는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고울라르트는 남부에서 어떠한 군사적 도움도 받지 못하게 됐다.
 
그가 브라질리아에 도착할 때, 그는 지지을 받지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상원 의장, 아우루 모우라 안드라데 상원 의장(Auro Moura Andrade)는 이미 쿠데타에 대한 의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고울라르트는 브라질리아에서 잠시 머문 뒤,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포르투 알레그레로 떠났다. 이 후 아우루 모우라 안드라데는 브라질의 대통령직이 공석이라고 선언했다.
 
4월 1일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통령 관저 앞에서 학생 2명, 히우에서 3명, 미나스 제라이스에서 2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