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예부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Zsidong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8번째 줄:
 
오히려 굳은 충정에 크게 감명한 송태조는 그녀를 후궁으로 삼았다. 송태조의 후궁이 된 화예부인은 기회를 노렸다가 조광윤을 죽이려 하였으나 이를 실패하자 스스로 자결하였다.
 
== 조광윤 형제의 갈등 ==
송나라에 포로로 잡혀온 서씨의 그 재능과 미모는 조광윤과 그의 동생인 조광의가 서로 질투하여 다투게 만들었다<ref name="sang1">샹관핑, 중국사 열전 후비:황제를 지배한 인물들(한정민 역, 달과소, 2008) 403페이지</ref>고도 한다. 서씨와 함께 포롤 잡혀오고 맹창이 죽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조광윤은 재빨리 서씨를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노여록》(爐餘錄)에 의하면 '촉주가 죽자 곧 태조의 궁으로 들어가 총애를 받았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어찌 알았을까? 동생 조광의도 이 재색을 겸비한 서씨를 노리고 있었다.<ref name="sang1"/>
 
서기 [[976년]] 겨울 조광윤이 임종이 가까워 침대에 누워 거의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조광의는 서씨에 대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한밤중에 조광의는 형 조광윤을 몇번이나 불렀으나 대답이 없자 서씨를 희롱했다. 조광윤이 일어나 이를 알고 분노하여 옥부(옥으로 된 도끼)로 바닥을 내리쳤다.<ref name="sang1"/> 놀란 황후와 태자가 왔을 때는 이미 임종이 가까워져 있었고, 조광의는 슬그머니 자신의 관저로 돌아갔다. 그리고 조광윤은 세상을 떠난다.<ref name="sang1"/>
 
== 가계 ==
* 남편 : [[맹창]]
 
== 주석 ==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