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실로프 공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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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 브루실로프 공세
|전체 = [[동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
|그림 = [[Image:DefendersEasternFront1916a.jpg|300px]] NGM-v31-p369-A<BR> [[Image:EasternFront1916b.jpg|300px]]
|설명 = 전진하고브루실로프 있는공세 러시아군.전과 후의 모습
|날짜 = [[1916년]] [[6월 4일]] - [[9월 20일]]
|장소 = [[갈라시아]]/[[트렌티노]] 방면
|결과 = 동맹국의 승리.
|교전국1 = {{국기나라|러시아}}
|교전국2 = {{국기나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br />{{국기나라|독일 제국}}
|지휘관1 = {{국기그림|러시아}} [[알렉스키 브루실루프브루실로프]]
|지휘관2 = {{국기그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콘로드콘라트 힌덴부르크회첸도르프]]<br />{{국기그림|독일 제국}} [[알렉산더 루덴도르프]]
|병력1 = 633,000명
|병력2 = 467,000명
|사상자1 = 500,000명 사상
|사상자2 = 1,500,000명 오스트리아 군 사상, <br> 350,000명 독일군 사상
}}
'''브루실로프 공세'''(Брусиловский прорыв)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알렉스키 브루실로프]]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군이 벌인 전투로 제1차 대전 중 유일하게 장군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이 공세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은 거의 괴멸당할 지경에 이르렀고 [[서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 |서부 전선]]의 [[베르됭 전투]]에도 영향을 주었다.
 
== 전투 배경 ==
이탈리아 왕은 [[트렌티노]] 방면을 강압하고 있는 [[오스트리아]]군을-헝가리 제국군을 흡수하기 위하여 동부전선에서 공세를 취하여 줄 것을 러시아 황제에게 간청하였다.
 
이에 러시아 황제는 군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서남 집단군은 6월 4일에 양공을, 서부 집단군은 6월 14일에 주공을 개시하도록 명력하였다. 이리하여 맹장 [[브루실로프]]는 휘하 50개사단을 4개군으로 편성하고 공격준비를 서둘렀다.
 
 
== 경과 ==
[[Image:Defenders NGM-v31-p369-A.jpg|300px|진군하는 러시아군]]
[[6월 4일]] 단시간의 기습적인 준비포격 후 브루실로프의 보병이 일제공격을 시작하였을 때 오스트리아군의 방어선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브루실로프군의 우익 제 8군은 오스트리아 제 4군과 제 2군의 간격을 돌파하여 [[6월 10일]]에 루츠크를 점령하고 80km의 돌파구를 이루었으며, 좌익의 제 9군은 [[체르노빗츠]] 북방을 공격하여 [[프루드 강]]에 도달하였다. 오스트리아군은 제 4군과 제 7군이 격파당하고 중앙의 제 2군과 남부군만이 [[렘베르크]] 전방의 방어진을 확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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