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오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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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년 ===
두 번째 총대주교직에 오른 포티우스는 후대를 위해 몇 가지 저작을 남겼다. 그 내용은 총대주교직 및 총대주교와 황제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였다. 바실리우스 황제의 말년에 간행된 《에파나고가》(''Epanagoga'', '입문')에서 포티우스는 비잔티움 제국은 황제와 총대주교가 이끄는 단일한 국가이며 두 사람은 백성의 물질적·정신적 행복을 위해 협력하여 일한다고 썼다. 바실리우스 황제의 말년에는 여러가지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포티우스만이 황제를 위로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바실리우스는 아들 [[레오 6세 (비잔티움 제국)|레오]]를 싫어했는데 포티우스가 그런 황제를 더욱 부추기기도 했다.
 
결국 [[886년]] 바실리우스가 사고로 죽고 [[레오 6세 (비잔티움 제국)|레오 6세]]가 제위에 올랐는데 제위에 오르자 마자 포티우스는 실각했고 [[887년]]에는 반역죄로 몰려 [[아르메니아]]의 외딴 수도원에 유배되었다. 포티우스는 그곳에서 자유롭게 신학과 문학 연구를 하면서 여생을 보내다가 [[893년]]에 조용히 죽었다.
 
{{전임후임
|전임자=[[이그나티우스 1세]]
|후임자=[[이그나티우스 1세]]<br />[[스테파노스 1세]]
|대수=86
|직책=[[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임기=[[858년]] - [[867년]]<br />[[877년]] - [[886년]]
}}
 
[[분류:820년 태어남]]
[[분류:893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