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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수신사들은 일본의 제도를 본떠 조선의 제도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여, [[청나라|청국]]을 시찰하고 돌아온 [[영선사 (사절단)|영선사]] 일파와의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수신사로 갔다 온 사람은 대개 급진적이었으며 영선사로 갔다 온 사람은 대개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주장은 [[1881년]] [[영남 만인소 사건]] 등 보수적인 유림의 반발을 사게 된다. 그러나 개화파는 [[1881년]] [[1월 11일]]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등 젊은 양반의 자제를 구성하여 [[신사유람단]]을 파견하였다.
 
===3차 수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