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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수신사===
[[1882년]] 고종 19년 [[2월 5일]] [[임오군란]] 직후 일본에 사과를 하기 위해 [[박영효]] 일행이 3차 수신사로 파견되었다. 종전에는박영효는 그때 [[태극기]]가 처음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었으나,<ref name="글로벌">기록을[[글로벌세계대백과]]사화기략,(使和記略)에 〈개화파의 개혁운동〉, 태극기의 사용남겼다. </ref> 오늘날에는 부정되고 있다.<ref name="gojong"> {{서적 인용 |저자=이태진 |제목=고종시대의 재조명 |발행일자=2000-08-30 |출판사=태학사 |위치=서울 |id=ISBN 89-7626-546-7 04910 |페이지=243-247쪽 |꺾쇠표=예| 인용문= }} </ref>
 
종전에는 그때 [[태극기]]가 처음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었으나,<ref name="글로벌"> 《[[글로벌세계대백과]]》, 〈개화파의 개혁운동〉, 태극기의 사용. </ref> 오늘날에는 부정되고 있다.<ref name="gojong"> {{서적 인용 |저자=이태진 |제목=고종시대의 재조명 |발행일자=2000-08-30 |출판사=태학사 |위치=서울 |id=ISBN 89-7626-546-7 04910 |페이지=243-247쪽 |꺾쇠표=예| 인용문= }} </ref>
수신사로 파견된 김기수, 김홍집 등은 《[[수신사일기]]》(修信使日記)를 기록으로 남겼다.
 
==기록==
수신사로 파견된 김기수, 김홍집, 박영효는 《[[일동기유]]》(日東記遊)(1~4권), 《[[수신사일기]]》(修信使日記)(1~2권), 《사화기략》(使和記略, [[1882년]])을 기록으로 남겼다. 수신사일기 2권에는 황준헌의 《조선책략》이 따로 소개되어 있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