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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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 아타나시우스의 옹호자였던 황제 콘스탄스가 죽자 다시 상황은 아리우스파에게 유리하게 전개된다. 콘스탄티우스와 아리우스파는 다시 아타나시우스를 제거하기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이집트 민중의 열열한 지지를 받고 있는 그를 숙청하기는 쉽지 않았고 급기야 [[356년]]에는 군대를 파견하여 아타나시우스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성 테오나시오 교회를 급습하고 수많은 신도들을 죽이는 유혈사태까지 발생한다. 아타나시우스는 거의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이집트의 사막에 있는 수도사에게로 피신했다. 약 6년간 계속된 도피는 박해자인 콘스탄티우스 2세가 죽고 [[율리아누스]] 황제가 즉위하자 끝났다.
 
율리아누스의 전통 로마 종교에 대한 옹호에 맞서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긴급 회의를 열어 기독교 교리의 오해를 해소하고 일치점을 찾으려 하였는데, 기독교의 일치를 원치 않았던 율리아누스 황제는 아타나시우스를 362년에 다시 추방하였다. 그 후 율리아누스가 [[사산조 페르시아]]와 싸우다가 전사하고 [[발렌스]]가 뒤를 이러이어 황제가 되자, 아타나시오스는아타나시우스는 다시 복권되었는데 그것도 잠시, 아리우스파였던 발렌스 황제는 [[365년]] 아타나시우스를 다시 추방하였다.
 
이에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이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키자, 황제는 결국 아타나시우스를 366년에 다시 복권시켰다. 약 4개월 만에 복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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