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평릉의 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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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년]] [[위 (삼국)|위나라]]의 2대 황제 [[조예]]가 죽고 [[조방]]이 즉위하자 대장군 [[조진]]의 아들 [[조상 (조위)|조상]]이 정권을 잡았는데 그의 빈객은 500명에 달했고 그 중 [[하안]], [[등양]], [[이승 (삼국지)|이승]], [[정밀]], [[필궤]], 대사농 [[환범]]이 조상의 측근이 되어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조상은 하안의 건의로 사마의를 태부로 삼고 병권을 장악해 동생 [[조희 (
이에 사마의는 두문불출하며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행동했고 그러자 조상은 종종 사냥을 즐겨 동생 조희와 환범이 간언을 했으나 조상은 이를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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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년]] 조상이 조방과 함께 선제 [[조예]]의 고평릉으로 세 아우와 심복 하안, 어림군 등을 거느리고 가자 사마의는 아들 [[사마사]], [[사마소]]와 함께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낙양으로 진군했다.
사마의는 사도 [[고유]]에게 대장군직을 맡겨 조상의 진지를, 태복 [[왕관]]에게 중령군직을 맡겨 조희의 진지를 점거하고 자신은 조예의 부인이던 곽태후를 찾아가 태위 [[장제 (위나라)
이에 수문장 [[반거]]가 궁수들을 이끌고 사마의를 공격하나 편장 [[손겸]]의 설득으로 중지하고 조상의 수하 사마 [[노지]]가 참군 [[신창]]과 상의해 누이 [[신헌영]]과 함께 황제를 찾아가고 환범은 부하 [[사번]]을 물리치고 겨우 성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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