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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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표가 죽은 후, 형주가 조조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조조는 장선을 도운 공적을 높이 기려, 그를 승상연주부(丞相掾主簿) 및 조군태수(趙郡太守)에 임명하였다.
 
환계는 [[조식 (조위)|조식]](曹植)을 총애하는 조조에게 [[조비]](曹丕)를 후계자로 삼을 것을 진언하였다. 당시 조식을 지지하던 [[정의 (위나라조위)|정의]](丁儀)가 조비를 지지하던 [[모개]](毛玠)와 [[서혁]](徐奕)을 비방하였는데, 환계는 이를 감쌌다. 이윽고 환계는 상서가 되었다. [[관우]](關羽)가 [[조인]](曹仁)을 공격하여 궁지에 몰린 조인을 위해 조조는 친히 군세를 이끌고자 하였으나, 환계는 조조에게 [[서황]](徐晃)을 믿는다면 직접 군세를 이끌지 말라고 하였고 조조는 그의 말을 듣고 마피(摩陂)에 군세를 주둔시켰다.
 
위(魏)가 건국된 후, 환계는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과 상서령(尙書令) 및 고향정후(高鄕亭侯)에 임명되었으며, 시중(侍中)에까지 올랐다. 문제(文帝 : 조비)는 환계를 극진하게 대했고, 그를 자신의 아들의 후견인이 될 만한 인재라고 생각하였으나 환계는 중병이 들었다. 문제는 그를 안락향후(安樂鄕侯)에 봉하는 한편 식읍 600호를 주었으며, 그의 3명의 아들을 관내후(關內侯)에 봉하였다. 환계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그를 9경(九卿)중 하나인 태상(太常)에 임명하였으나, 환계는 얼마 가지 못하여 죽었다. 문제는 그에게 정후(貞侯)를 시호로 내렸으며, 아들 환가(桓嘉)가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