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제 (동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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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년]], 예장(豫章) 동부의 평민 1만여 명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여 많은 포로를 사로잡았고, 그 공로로 분무장군(奮武将軍)으로 승진했다. [[216년]], 파양(鄱陽)의 불복종자들이 [[조조]](曹操)의 인수(印綬)를 받고 반란을 일으키자, 능양(陵陽) · 시안(始安) · 경현(涇縣)이 협력하였다. 하제는 [[육손]](陸遜)과 함께 이를 토벌하여 수천 명을 죽이고 당양의 세 현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그 공로로 안동장군(安東將軍)에 임명되었으며, 산음후(山陰侯)로 봉해졌다.
 
[[222년]], [[위나라]]가 오나라를 세 방면에서 침공하자, 양주(揚州) 방면으로 진격한 [[조휴]](曹休) 등을 [[여범]](呂範), [[서성 (오나라동오)|서성]](徐盛) 등이 동구(洞口)에서 막으려 하였으나, 여범이 이끄는 군대는 큰 폭풍우를 만나 병사 수천 명이 익사했고, 위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아 격파당했다. 하지만 하제는 [[장강]](長江)을 건너지 않은 채 신시(新市)의 수비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제는 항상 자신의 군대를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무장시켜 전투에 임했으며, 조휴 등은 이를 보고 두려워하여 물러났다. 이 싸움 후 후장군(後将軍)에 임명되었으며, 가절(仮節)을 받아 서주목(徐州牧)을 배령받았다.
 
오나라 희구(戱口)의 수비 장수 [[진종 (동오)|진종]](晋宗)이 위나라에 투항하여 기춘태수(蘄春太守)가 된 이후 자주 오나라 변경을 습격하자, [[223년]] 조휴 등이 위나라로 회군한 뒤 손권의 명을 받고 [[미방]](糜芳)과 [[선우단]](鮮于丹)을 이끌고 진종을 공격하여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