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샤와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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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샤와르'''({{llang|ur|پشاور}}, {{llang|ps|پېښور}})는 파키스탄 [[노스웨스트프런티어 주]]의 주도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인 카이바르 고개(Khaibar) Pass)의고개의 동쪽 50킬로미터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이다.
 
페샤와르는 페르시아어로 '고지대의 요새'란 뜻이라고 하며, 파슈토어로는 페콰와르(Pekhawar) 또는 페샤와르(Peshawar)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옛 이름은 푸르샤푸라(Purushapura)인데푸르샤푸라인데, 산스크리트어로 푸르샤푸라는푸르샤푸라(Purushapura)는 '남자의인간의 도시'란 뜻으로 페샤와르가 이것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지금 페샤와르가 있는 지역은 기원전 2세기에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왕 에우크라티데스에 의해 합병되었으며, 2세기에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은 푸르샤푸라에 수도를 두었다. 불교가 융성했던 이곳은 998년에 터키계 무슬림에 점령되면서 이슬람화되었고, 16세기에 [[무굴 제국]]의 [[악바르]]에 의해 변경 도시라는 뜻의 페샤와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 뒤 1838년 [[시크 왕국]]에 점령되었으며, 1849년에는 제2차 시크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이 도시는 [[아프간]], [[페르시아 제국|페르시아]], [[그리스]], [[마우리아]], [[스키타이]], [[아랍 제국|아랍]], [[투르크]], [[몽골]], [[무굴]], [[시크 왕국|시크]]와 [[영국]]등 많은 세력들에 의해 다스려져 왔다. 페샤와르는 옛부터 동서 교역로인 [[비단길]]의 주요 거점 도시 가운데 하나였고 다양한 문명의 교차점이었다. 간다라 왕국의 불교 유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교통 요충지로서 상업이 발달하였다.
 
한편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페샤와르에는 아프간 난민 수용소가 세워졌으며 [[무자헤딘]] 그룹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현재도 파키스탄 내 [[파슈툰족]]의 문화적 수도 구실을 한다.